유럽은 IT , 일본은 데이터…‘화웨이 차단’ 블록 쌓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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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국과 중국 간에 ‘화웨이 긴장’이 계속되는 가운데 중국 ‘기술굴기’ 견제 전선에 유럽과 일본이 본격 가세했다. 유럽은 대규모 공동 투자를 통해 중국 기업의 무차별 공격에 대응하기로 했고 일본은 개인정보 등 각종 데이터의 유통에서 ‘중국 왕따’를 시도하고 나섰다. 1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프랑스·독일·영국·이탈리아 정부가 10조원 넘는 투자를 유치해 설립하는 거대  정보기술(IT) 연구단지 사업이 본격화된다. 유럽연합(EU) 공식 기구인 반독점당국이 80억 유로(약 10조 2500억원) 규모의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연구 및 개발 단지 설립 계획을 허가하면서다.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는 초고밀도집적회로 개발이 핵심이다. 컴퓨터·통신 등 반도체 응용 분야에 폭넓게 적용할 수 있어 각종 첨단 IT 개발에 필수적이다.

독일·영국 등 4개국 10조원 투자 #IT단지 조성, 중국 반도체 공세 대응 #일본, 미·EU와 ‘데이터 유통권’ 추진 #중국 겨냥 개인정보 유출 봉쇄

유럽 4국이 공동 추진하는 이 사업은 유럽 내 기술 경쟁력을 강화해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기업의 무차별 공격에 대응하겠다는 의도다. 2024년까지 공공부문과 민간 투자를 동시에 받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연구·개발에 중점을 두는 리서치 센터와 기업들을 한 곳에 모아 시너지 효과를 노린다.

이번 투자 승인 결정은 ‘더 이상 이대로 뒀다가는 유럽 내 IT업계의 씨가 마를 수 있다’는 위기위식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간 EU는 반독점을 기치로 회원국을 넘나드는 투자유치 및 기업 합병을 엄격하게 규제해왔지만 중국 기업의 ‘침공’이 도를 넘었다는 의미다.  WSJ는 “중국이 태양광·풍력·전기자전거에서 고속철도에 이르기까지 첨단 분야에서 지식재산권을 도용해 유럽의 영향력이 약화됐다는 비판이 컸다”고 전했다. 익명의 EU 소속 선임 외교관은 “EU 입장에서는 중국 정부의 무제한 자금 지원을 받는 중국 기업이 불공정한 경쟁 우위를 가지는 것을 막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미국이 동맹국을 중심으로 펼치고 있는 ‘반(反) 화웨이’ 작전에 적극 동참해온 일본 정부는 한걸음 나아가 개인정보 등 각종 데이터의 유통에 대해서도 중국을 배제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19일 일본 정부는 아베 신조(安倍信三) 총리 주재로 IT 종합전략본부 회의를 열고 미국·EU와 ‘국제 데이터 유통권’을 구축하기로 결정했다. 개인정보 보호나 인터넷의 안정성에 관한 규정이 정비됐다고 인정되는 미국·유럽과는 개인 및 산업 정보를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하되, 그렇지 않은 나라에 대해선 데이터 제공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요미우리 신문은 “정부의 데이터 관리 하에 거대 IT 기업을 육성하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회의에서 “새로운 자원인 데이터를 둘러싸고, 세계에서 격렬한 쟁투전이 펼쳐지고 있다. 공정하고 상호 호혜적인 룰 아래, 자유롭게 데이터가 유통되는 환경을 정비해야 한다”면서 “자유롭게 열린 ‘국제 데이터 유통권’을 세계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미국 상무부와 통상대표부(USTR), 유럽 위원회 등과 조만간 제도 설계에 들어가기로 하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 IT정책 대강’을 내년 봄 마련할 방침이다. 향후 인도 등 신흥국으로도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특히 이런 방안은 알리바바 등 중국 기업을 겨냥한 것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보도했다. 중국의 IT 대기업이 일본에서 수집한 개인 정보를 중국으로 가져갔을 경우, 만의 하나 중국 정부에 제공돼 다른 목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우려가 있다는 게 일본 정부의 판단이라는 것이다.

심새롬 기자, 도쿄=윤설영 특파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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