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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로드를 가다(1) |교역로 따라 의식관습도 뻗어간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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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타고 몇 날 며칠 밤을 달려간 한국의 폴리에스터 섬유사가 헝가리 부다페스트 외곽의 한 공장에서 실로 만들어진다.
미국의 무역장벽을 뚫기 위해 미국의 코앞인 중미 코스타리카에 한국기업이 차린 봉제공장에서 지금도 현지인 여공들이 열심히 재봉틀을 돌린다.
서독 하이델베르크 성의 거대한 포도주 통 위에 올라가면 「왔다 간다」라는 한글 낙서가 쓰여져 있고, 스위스 제네바의 한 관광식당에서 매일 저녁마다 열리는 악단 연주의 첫 곡으로 곧잘 아리랑이 등장한다.
미국의 촌구석 중의 촌구석인 캔자스주 한 시골농장에서 담배농사로 먹고살고 있는 미국의 한 농부가 『한국은 담배시장을 더 개방해야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의 한 관광호텔에서는 88라이트가 말보로와 함께 팔리고 있다.
레닌그라드의 택시기사가 한국인승객에게 대번에 『올림피아드』라며 반가워하기 일쑤며,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흑인이 운전하는 택시를 타고 『깜둥이』운운 했다가는 『한국에서 왔습니까』라는 우리말 질문에 머쓱해지기 쉽고,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도 호텔 앞을 나서면 『택시로 모실까요』라며 택시기사들이 다가선다.

<세계 10위 교역 국>
방콕이나 홍콩에서 쇼핑을 할라치면 『안 비싸』라는 한국말에 더 이상 에누리하기가 어렵고, 유고슬라비아의 고급상점에는 한국산 오디오제품이 일제나 미제 하이파이보다 더 비싼 가격표를 달고 진열되어 있다.
방콕에는 최근 원화를 바꿔주는 은행이 등장했고, 로스앤젤레스에서 10만원 짜리 한국 보수가 통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되었다.
모스크바의 호텔 프런트에서 한국 기업인끼리 마주치는 일이 흔하고, 유고슬라비아의 한 가죽공장에서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서울의 어느 중소기업이 파견한 기술자가 현장지도를 하고 있다.
코리아 로드-
고대의 실크로드가 단순한 통상로가 아니었듯이 오늘날 우리가 세계곳곳에 안 간데 없이 개척해놓은 우리의 교역로는 단순히 상품과 서비스만이 오가는 길이 아니다.
실크 로드가 동서문물의 교류를 통해 고대인들의 의식의 지평을 넓힌 역동적인 길이었듯이 오늘날 우리가 놓은 코리아 로드는 세계 속에 한국을 심고 동시에 세계를 한국으로 받아들이는 통로다.
우리 스스로도 미처 확실히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새 세계 1백80개국과 교역하면서 세계 10위의 교역국으로 자리잡은 한국은 이제 더 이상 지구상의 변방에 자리잡은 작은 개도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식이 미처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한국의 문물과 세계의 문물이 코리아로드를 통해 현란하리 만큼 교류되고 있다.

<경상수지 흑자로>
쇠고기와 담배를 놓고 한국과 미국의 농민이 바로 얽혀 있고, 한국이 물질특허를 내놓고 있는 새로운 항생제가 선진국들의 의료수준을 높일 것이며, 임금인상을 외치는 한국의 노사분규가 한국기업의 해외이전을 촉진시켜 코스타리카나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늘러주는가 하면, 우리가 배워오는 새로운 금융기법이 산업을 발전시킨다.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는 서구식 패스트푸드 체인이 한국어린이들의 입맛은 물론 가정주부들의 의식까지도 바꾸어놓고 있으며, 아무리 노력해봐도 자기아들만큼 전자오락에 능숙해지지 못하는 한국의 40대는 한국의 전자산업을 전체 수출을 주도하게까지 끌어올려 놓은 주역들이다.
새롭게 열리기 시작한 북방경제의 장은 이 땅의 6·25 세대에게 의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 있으며, 한미무역마찰은 새로운 한미관계를 정립하는데 결정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
여느 나라들의 통상로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개척한 코리아 로드도 벌써 오래 전부터 체제와 이념의 벽을 넘고 통상마찰의 파고를 헤치며, 지구의 24시를 밝히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와 한국을 교류시키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60년대 이후 근 30년간 앞만 보고 달려오는 사이 우리의 세계를 향한 교역은 우리 스스로가 새삼 깜짝 놀랄 만큼 우리의「의식」을 저만치 앞서 가 있다.
지난해 한국의 대외 교역규모는 1천1백25억7백만 달러로 세계 10위였으며, 경상수지는 1백41억6천만 달러로 세계 3위에 올랐다.
지난 80년만 해도 우리의 총 교역량은 3백98억 달러로 세계 24위였고, 경상수지는 53억2천만달러의 적자였으니 8년만에 교역의 덩치가 3배 가까이 커지면서 우리보다 앞서가던 13개국을 뒤로 제쳤고, 적자 국의 팻말을 흑자 국으로 바꿔 단 것이다.
지난해의 이 같은 교역규모는 지난 한 해 동안 열린 총 51만8천7백87건의 수출 신용장, 63만2천1백21건의 수입허가서가 주춧돌을 놓은 것이다.
관세분류상 우리의 지난해 수출품목수는 6만6백96개, 수입 품목수는 5만1천8백11개로 87년에 비해 1년 새 품목수가 각각 28·4%, 26·3%씩 늘어났다.
개중에는 몇 해 전 필리핀에서 보약재로 수입을 한다하여 해외토픽에 올랐던 한국산 굼벵이와 같은 물건이 있는가 하면 26만t급의 대형선박도 있다.
교역상대국도 별의 별 희한한 나라가 다 있다.

<국제 조세국 설치>
아프리카의 상토메프린시페·모리셔스·카보베르데 오세아니아의 투발루·바누아투·니우에와 같은 나라들에도 소량이나마 한국의 상품이 들어가고 있고, 그 같은 나라들을 다 합쳐 지난해 우리의 수출상대국은 모두 1백80개국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우리 기업들의 교역 망도 점점 더 넓어져 지난해 말 현재 국내기업의 해외현지법인·지사·사무소는 모두 2천1백2개에 달했다.
이 같은 숫자도 벌써 한참 낡은 통계다.
1인 지사들의 부심이 워낙 심한데다 당장 올해 초 만해도 모스크바에 우리기업의 1인지사가 설치되기도 했다.
69개 국가에 79개 무역관, 1백81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 무역진흥공사(KOTRA)가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공산권통상정보센터를 설치했고 국세청이 지난 86년 처음으로 국제 조세국을 두게된 것도 우리와 세계와의 교역이 확대됨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다.
지난해 국세청이 국내의 외국인 법인과 외국인 투자기업들로부터 거둔 세금은 모두 3천9백80억 원으로 전체 법인세의 20·2%나 됐다.
87년과 비교하면 1년 사이 금액으로는 44·7%, 법인세비중으로는 1·6% 포인트가 늘어난 것이다.
외국기업들이 그만큼 우리주변에 성큼 다가와 있는 것이다.

<해외투자액 급증>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도 아직은 초기단계지만 최근 급속히 늘기 시작, 올 1월말 현재 국내기업의 해외투자는 총 6백87건에 11억3천2백14만 달러로 85년에 비해 건수로는 55%, 금액으로는 1백38%가 각각 늘어났다.
개중에는 1백68개의 해외현지공장 (88년 12월말 현재)이 포함되어 있다. 기업만이 아니다.
88년 기준 우리의 해외 교민 수는 2백12만3천명으로 80년의 1백47만 명에 비해 8년 새 거의 배로 늘어났다.
특히 중남미지역의 교민 수는 80년 2만1천명에서 88년 9만5천4백76명으로 4배 이상 늘어났고, 뉴욕의 맨해턴에 「24시간 해장국 합니다」라는 한글 간판이 내 걸린 지는 이미 오래되었으며, 지난해에는 뉴욕에 최초로 한국인거지가 등장했다는 것이 현지 교민들 사이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더 이상의 통계를 나열할 필요도 없이 우리와 세계와의 교역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할 만큼 급속히 덩치가 커지고 있고 또 저만치 앞서 달려가고 있다.
동시에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또 득이 되든 실이 되든 우리가 개척한 교역로는 우리의 의식과 관습과 정책에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열어놓고 있다.
고대의 실크 로드와 같이 오늘날 우리 스스로가 닦은 코리아 로드는 단순한 「개척 담」의 대상이 아니라, 그 스스로가 우리의 존재와 의식에 영향을 주는 「살아있는 길」인 것이다.
코리아 로드의 생생한 현장을 따라가 보는 일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그 현장에서 우리는 세계 속의 한국과 만나고 무역장벽과 부딪치며 개방과 국제화의 문제를 다시금 생각게 된다.
이념과 체제의 울타리를 넘어가고 넘어오며 우리의 「체제」를 새삼 돌이켜 볼 기회도 있고, 그럼으로 해서 우리의 시계를 세계의 지평으로까지 넓힐 수 있다.
코리아 로드를 따라가 보자.<글·김수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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