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기사·보도자료 베껴 첩보 만든 김태우에 휘둘린다"…의인화 차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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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특별감찰반에서 활동했던 김태우 수사관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언론이 김 수사관에 휘둘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19일 브리핑에서 “대변인과 국민소통수석 차원에서 (이 사건에) 대응한 것은 김 수사관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보도하는 언론 때문이었다”며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지난 언론들이 김 수사관의 휘둘림을 알면서도 당한 건지 모르면서 당하는 건지 판단해달라”고 말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특감반 의혹과 관련해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특감반 의혹과 관련해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김 수사관은 지난달 2일 경찰청을 방문해 자신이 생산한 첩보의 진척상황을 알아본 사실이 드러나 업무에서 배제됐다. 이후 검찰로 복귀해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언론에 자신이 생산한 첩보 내용을 전달하며 “여권 실세의 정보를 보고했다가 쫓겨났다”고 주장했다. 김 수사관은 18일 중앙일보에 전달한 입장문에서 “경찰청 방문은 첩보 성과를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지인 사건을 조회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김 수사관의 휴대전화를 분석해 김 수사관이 경찰청 방문 전 공무원 뇌물 사건에 연루된 건설업자 최모씨와 수십차례 통화한 사실을 확인했다. 또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회견을 열어 경찰청 제출 자료를 근거로 “김 수사관이 2일 오후 2시 50분 특수수사과를 방문했는데, 그날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최씨가 수사를 받았다. 경찰청 방문은 지인의 수사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였다는 합리적 의심이 짙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김 수사관이 최모씨가 조사받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경찰청에 압력행사를 한 적은 없는지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김 수사관이 최씨에게 설과 추석에 문 대통령 명의의 선물을 보냈다는 말도 나온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 부부 이름으로 사회 각계 주요인사와 국가유공자, 사회적 배려계층 등 1만여명에게 울릉도, 강화도 등 섬마을에서 생산되는 특산물로 마련된 선물 세트를 보냈다.청와대

추석 명절을 앞두고 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 부부 이름으로 사회 각계 주요인사와 국가유공자, 사회적 배려계층 등 1만여명에게 울릉도, 강화도 등 섬마을에서 생산되는 특산물로 마련된 선물 세트를 보냈다.청와대

청와대는 김 수사관이 공개하고 있는 첩보의 질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10워 14일 인터넷 매체가 보도했던 도로공사 의혹 관련 사진(좌)과 12월 19일 한 매체가 사용한 유사한 사진(우)

10워 14일 인터넷 매체가 보도했던 도로공사 의혹 관련 사진(좌)과 12월 19일 한 매체가 사용한 유사한 사진(우)

이날 한 매체는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이 우제창 전 의원이 운영하는 업체에 커피기계 공급 특혜를 줬다’는 김 수사관의 제보 내용을 보도했다. 이에대해 김의겸 대변인은 “해당건은 10월 14일 온라인 매체에 상세히 보도됐고, 다음날 함진규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정감사 자료로 배포한 것과 유사하다”며 “김 수사관이 이를 첩보라고 제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 수사관이 첩보를 제출한 것은 (보도 이후인) 10월 31일 또는 11월 1일인데 김 수사관의 첩보가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판단해달라”고도 말했다.

김 대변인은 김 수사관의 주장을 보도한 매체도 비판했다. 그는 “10월 14일 보도에 등장한 사진과 이날 보도 사진이 유사한데, 이 사진은 모 교회 커뮤니티에 있던 것으로 이미 삭제됐다”며 “그렇다면 이 매체가 (앞서 보도한 매체의) 사진을 (무단으로) 이용했다는 게 상식적 판단”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자도 기사를 베껴 쓰는 것을 가장 부끄럽고 창피하게 생각하는데, 첩보를 다루는 사람이 이런 첩보를 올리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이날 오전 김 수사관을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전날 법무부에 추가 징계를 요청한 이후 후속 조치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청와대 특별감찰반 정권실세 사찰 보고 묵살 및 불법사찰 의혹 진상조사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청와대 특별감찰반 정권실세 사찰 보고 묵살 및 불법사찰 의혹 진상조사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청와대가 김 수사관의 ‘개인 비위’를 부각시키는 것은 김 수사관이 권력의 피해자 또는 공익폭로자로 비춰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실제로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이날 한 방송에 출연해 “본질은 개인 비위 문제인데 김 수사관이 마치 의사(義士)가 된 것처럼 의인 만들기 프레임으로 바뀌었다”며 “(정윤회 문건을 폭로한) 박관천 전 경정처럼 처음부터 문제제기 한 것이 아니라 인사상 불이익과 골프접대 의혹이 나온 뒤 주장에 나선 사람의 말을 어떻게 믿느냐”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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