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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업계는 지금…(15) 단자업 「콜거래 중개」놓고 심한 "몸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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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즘 단자 (투자금융) 회사들은 콜시장 (금융기관간 단기자금거래시장) 에서 자금거래를 중개하는 브로커업무를 따내기 위해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정부가 3월부터 서울지역 16개 단자회사들에 콜거래 중개업무를 허용하고 앞으로 6개월간 전체 거래실적 중 10%이상을 차지하는 단자사(6∼7개사로 전망) 에만 그후 정식 콜거래 중개업무권을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70년대 후반과 같은 호시절은 이제 다 간 것이 아니냐는 단자사 쇠퇴론이 일고 있는 마당에 새로운 업무가 부여될 판이니 업계의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투금이 최초>
콜거래 중개업무를 따기 의한 단자사들의 몸싸움이 얼마나 뜨거운 가는 이들이 중개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갖은 변칙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즉 단자사들이 콜거래형태를 통해 일반여신 (할인)을 취급하거나 마음에 맞는 단자사끼리 콜자금을 주고 받는 행위 등이 그런 예다.
단자업계의 경쟁이 이처럼 치열한 것은 기본적으로 시장크기에 비해 업체수가 너무 많은 데서부터 비롯된 일이다.
국내 단자회사의 역사는 72년8월 당시 기업의 큰 자금줄인 단기금융시장(사실상 사채시장) 을 건전하게 육성한다는 취지아래 단기금융업 법이 제정되면서 부터다. 이로써, 7l년6월 재무부령에 의해 이미 설립돼 있던 한국투자금융이 법에 의해 인가된 최초의 단자회사가 됐다.
그후 73년에 서울투금 등 5개 사가, 77년에 제일 투금이 각각 설립되면서 서울지역에서는 이들 7개 사가 시장체제를 갗춰 나가기 시작했다.
지방에서는 73년 6월 부산투금을 시발로 70년대 말까지 8개 사가 생겨났다.
그러나 82년 이·장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금융기관간 경쟁을 촉진하고 사 금융권을 제도금융화한다는 명분아래 기존의 단자사 만큼을 새로 허용했다. 서울에 신한투금 등 9개사가 더 생겨났고 지방에도 83년 말까지 8개 사가 추가로 설립돼 단자사수는 서울과 지방에 각각 16개 사씩 모두 32개 사가 난립, 지금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 외자를 조달해 국내기업들의 자금공급창구역할을 하도록 한다는 목적으로 인가된 6개의 종합금융회사까지 합치면 단자업체 수는 38개 사에 달한다.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14∼15배나 큰 일본에도 단자회사가 6개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많은 숫자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일본의 단자회사들은 우리의 단자회사와는 성격이 다르다. 일본의 경우 단자사들의 주업무가 단기자금중개 및 중앙은행의 공개시장조작의 파트너역할인 반면 우리 나라의 단자사들은 이 같은 업무는 부수적이고 사실상 은행성격의 여·수신업무가 주류를 이룬다.
32개 단자사들의 자본금합계가 7천4백81억 원으로 시중은행 2개를 합친 8천억 원보다도 적지만 이들의 수신실적 (어음매매 중개분 포함)은 작년말 현재 약 13조원으로 24개 예금은행 전체수신 (작년 말 현재 57조5천억 원)의 22·6%에 달한다는 것이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처럼 특이한 배경을 안고 급 성장한 단자사들은 70년대 후반만 해도 상경학과 졸업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 중의 하나였다. 떼돈을 벌어 직원들의 봉급수준이 일반회사보다 2배 가까이 높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80년 당시 18개 단자사들의 납입자본금에 대한 당기순이익률은 82%로 당시 상장회사 중 제조업체들의 납입자본 이익률 9·8%에 비해 무려 8배 이상 높았다.
그러던 것이 80년대 들어 신설사들이 무더기로 설립되면서 경쟁이 심화돼 85년 당기순이익률은 17·5%까지 떨어졌다. 그후 새 상품의 도입 등 영업전략강화에 힘입어 지금은 다시 20%선을 웃돌고 있으나 옛날의 영화에는 미치지 못하고있다.

<70년대 말엔 호황>
더욱이 앞으로의 전망은 결코 밝은 편이 아니다.
무엇보다 단자회사를 찾는 고객이 줄고 있다. 86년 이후 연3년 12%대의 고도성장에 힘입어 기업들의 내부자금 축적이 큰 진전을 보이고 증시활황에 따라 직접금융이 확대되면서 단자사들의 주고객인 대기업들의 발길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다 작년 12월부터 시작된 금리자유화조치와 함께 은행 쪽의 자금규제가 풀리면서 기업들의 단자사에 대한 자금수요는 급격한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고 또 은행에 기업적금 및 기업자유예금 등을 허용함에 따라 수신면에서도 크게 불리해졌다.
특히 강도 높은 통화긴축조치가 취해졌던 지난 2월에는 단자사들이 부도위기에 몰릴 정도로 심각한 자금난에 빠져 여신을 중단하는 사태까지 빚었다.
사실 똑같은 조건으로 여·수신업무를 경쟁시키자면 단자회사들은 은행과 비교할 바가 못된다.
예금은행의 점포수가 전국적으로 작년 말 현재 3천 개에 달하는 반면 단자사들은 서울에 16개, 지방에 16개 등32개뿐이기 때문이다.

<업무특화 바람직>
이 때문에 정부나 관계기관의 금융산업 개편안에서는 단자회사들이 앞으로 기업어음 매매중개 및 콜시장의 전문딜러 등 고유업무에 치중하고 은행예금과 같은 성격의 자체발행어음 등은 단계적으로 폐지, 단자사업무를 특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 같은 업무조정 과정에서 원하는 단자사에 대해서는 증권·투신·지방은행 등과의 합병 또는 전환을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정작 단자회사 관계자들은 이 같은 개편방안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주주들의 반발로 합병 또는 전환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현재 법률상으로는 허용돼있으나 실제로는 규제 받고 있는 유가증권관련업무를 풀어달라고 요구하고있다.
결국 반강제적인 금융산업개편이 아니라면 현재의 단자업을 계속하겠다는 것이 많은 업계관계자들의 생각이다.
이에 따라 단자업계는 국제 팩트링업무나 무역어음업무 등 새 상품의 개발 및 도입에 주력함으로써 난국을 타개해 나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심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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