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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쓰레기봉투에 버려야 하나요" 전국서 동물화장장 건립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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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화장장 어쩌나] 

대구 서구 상리동 동물화장장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 100여 명이 지난달 28일 오전 동물화장장 신축 심의가 열리는 서구청 앞에서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뉴스1]

대구 서구 상리동 동물화장장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 100여 명이 지난달 28일 오전 동물화장장 신축 심의가 열리는 서구청 앞에서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뉴스1]

대구의 첫 번째 동물화장장 건립이 허가 직전까지 갔다가 최근 사실상 무산됐다. 지난 7일 국회를 통과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에서 '동물장묘시설은 학교와 300m 이내 지역에 짓지 못한다'는 거리제한 규정이 생기면서다. 대구에 건립을 추진 중인 동물화장장은 계성고로부터 192m 거리여서 개정안이 적용되면 허가를 받을 수 없게 됐다.

이 동물화장장을 둘러싼 갈등은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됐다. 당시 한 사업자가 대구 서구 상리동에 지상 2층, 연면적 1924㎡ 규모의 동물화장장을 짓겠다고 서구에 건축 허가를 신청했다. 소식이 알려지자 주민들이 강하게 반대했고 서구는 민원을 이유로 신청서를 반려했다. 사업자는 같은 해 5월 서구를 상대로 건축허가 취소 반려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사업자는 올해 9월 10일 다시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번 개정안 통과에도 동물화장장 건립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사업자가 반발하며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어서다. 사업자 측은 이미 4개월 전 대법원 적법 판결이 났는데도 서구가 고의로 허가를 미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 1500만 명 시대. 동물을 기르는 일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반려동물의 죽음'이 지역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10일 강원 춘천시 남이섬 평화랑에서 반려동물과 사람을 주제로 한 '개인취향 전(展)'이 열린 가운데 애견인과 반려견이 전시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10일 강원 춘천시 남이섬 평화랑에서 반려동물과 사람을 주제로 한 '개인취향 전(展)'이 열린 가운데 애견인과 반려견이 전시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뉴스1]

김현중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 부연구위원에 따르면 지난해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는 약 1481만명으로 추정된다. 전국 1952만 가구 중 29.4%인 574만 가구가 총 874만 마리의 반려동물(개 632만 마리, 고양이 243만 마리)을 기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반려동물이 많이 늘어난 만큼 동물의 사체 처리 수요도 빠르게 늘고 있다. 현행 동물보호법상 애완동물의 사체는 화장을 하거나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려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반려동물 사체 발생량을 68만8000마리로 추산했다. 동물의 사체는 일반적으로 '폐기물'로 처리돼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려야 한다. 동물병원에서 죽었을 경우 공동 화장해 의료용 폐기물로 처리한다. 임의로 매장·소각·투기하는 것은 위법이다.

반려동물 사체를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리는 데 거부감을 갖는 이들이 찾는 곳이 바로 동물장묘시설이다. 동물장묘시설은 반려동물의 사체를 화장·건조·납골·봉안하고 장례식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대구에 사는 이지윤(33·여)씨는 "최근 기르던 개가 숨을 거둬 동물병원에서 소개해 준 동물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렀다. 가족처럼 지내던 반려견을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반려동물 장례식장인 펫포레스트 내부. [사진 펫포레스트]

반려동물 장례식장인 펫포레스트 내부. [사진 펫포레스트]

문제는 동물장묘시설 건립이 지역민들의 반대를 불러온다는 점이다. 김영순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장묘시설 예정지 인근 주민들은 혐오시설이 들어와 지역 이미지를 해치고 부동산 가격이 내려갈 것이란 우려 때문에 반대 민원을 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화장·건조시설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진이나 냄새가 건강을 해치고 상수도원이 오염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고 했다.

최근 갈등이 일어난 대구뿐 아니라 광주광역시에서도 지역 첫 동물장묘시설 건립을 두고 주민 반발이 나왔다. 한 사업자가 6월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학동에 지상 2층 규모 동물장묘시설을 짓겠다며 건축허가를 신청하자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인근 마을 주민 160여 명은 장묘시설 건축 허가 철회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광산구에 제출했다. 이 밖에도 경남 함안군, 경기 용인시·양평군 등에서도 유사한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삼산리 동물장묘공원 조성 추진 지역에 지난해 9월 내걸렸던 현수막. [사진 동물장묘공원 조성 추진 A사]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삼산리 동물장묘공원 조성 추진 지역에 지난해 9월 내걸렸던 현수막. [사진 동물장묘공원 조성 추진 A사]

공공 동물장묘시설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경남 김해시도 최종 후보지 발표에 신중한 입장이다. 시비 1억원을 들여 실시한 공공 동물장묘시설 건립 타당성 조사 용역 결과가 지난 8월 나온 지 4개월째 접어들었지만, 후보지 발표는 하지 않았다. 후보지 인근 주민들의 반발이 예상돼서다. 김해시는 주민 반발이 가장 작을 것으로 예상하는 지역을 최종 후보지로 정하고 주민설명회를 열겠다는 방침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동물장묘시설의 수는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적은 편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등록된 동물장묘시설은 모두 28곳이다. 2015년 기준 일본의 동물장묘시설 수 520여 곳이다. 동물장묘시설에서 하루 3~10건을 처리할 수 있는데 전국의 모든 장묘시설을 365일 가동한다고 해도 한 해 발생하는 반려동물 사체(68만8000여 마리)의 15% 정도만 처리할 수 있다.

사람의 장례식장과 유사하게 꾸며진 반려동물 장례식장.납골당에 안치된 한 반려견을 기억하기 위해 주인이 반려견의 사진과 생전에 좋아하던 간식을 올려두었다. [중앙포토]

사람의 장례식장과 유사하게 꾸며진 반려동물 장례식장.납골당에 안치된 한 반려견을 기억하기 위해 주인이 반려견의 사진과 생전에 좋아하던 간식을 올려두었다. [중앙포토]

김 교수는 "수요 급증이 예상되는 동물 사체 처리를 원활히 하기 위해선 우선 주민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장묘시설 건립 과정에서 주민 설명회 개최 의무화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구=김정석·백경서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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