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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마크]전현희 "강남 당선도 기적···카풀도 대타협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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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의원의 20대 총선 선거 벽보엔 ‘꼭! 해내겠습니다’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치과의사를 하다가 사법고시에 합격해 ‘치과의사 출신 1호 변호사’가 됐고, 에이즈에 걸린 혈우병 환자들을 위한 소송에 10년 동안 매달려 제약사의 손해배상을 끌어낸 그의 집념을 강조한 문구였다. 20대 총선 땐 민주당의 불모지인 강남을에 출마해 당선됐는데,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20대 총선 최대 승리”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악전고투(惡戰苦鬪)의 끝을 승리로 맺은 경험이 적지 않은 셈이다.

택시 카풀 전쟁터에 선 전현희

전현희 의원이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벽에 걸린 고흐의 '해바라기'가 걸려 있다. 전 의원은 20대 총선 유세에서 '강남을만 바라본다'는 의미로 해바라기 브로치를 달고 유세를 했다. 윤성민 기자.

전현희 의원이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벽에 걸린 고흐의 '해바라기'가 걸려 있다. 전 의원은 20대 총선 유세에서 '강남을만 바라본다'는 의미로 해바라기 브로치를 달고 유세를 했다. 윤성민 기자.

진퇴양난(進退兩難)

하지만 요즘 같은 악전(惡戰)이 또 있었을까. 전 의원은 택시 기사와 카카오 카풀이 양쪽을 당기고 있는 줄다리기 경기에서 줄 한가운데를 잡은 심판 역할을 맡고 있다. 민주당 택시ㆍ카풀 태스크포스(TF) 위원장으로서 택시 업계와 카카오의 입장을 조율해 중재안을 마련하는 게 그의 역할이다. 국토 교통 환경 노동 분야를 담당하는 당 제 5정책조정위원장이다보니 중책이 주어졌다. 지난달 1일 첫 회의를 했다. 그러나 어떤 중재안이 나와도 양측의 불만이 없진 않을 터, TF는 출범 한 달 반이 지나도록 4차 산업을 향해 진격하지도 택시 업계 보호를 위해 회군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그 사이 점점 줄은 끊어질 듯 팽팽해져만 가고 있다. 카풀 문제 관련 당정 협의회가 있던 날인 지난 14일 전 의원을 밀착마크했다.

당정 협의회 끝난 뒤 “코피 터지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생 코피를 흘린 적이 없는데 최근에는 코피도 계속 터지고 밤에 자다가 혈압이 오르기도 한다. 쓰러지겠다 싶을 때도 있다. 자다가 병원에 실려 가는 거 아닌가 두려움을 느끼는 적도 많다.
서울개인택시조합 소속 택시 운전기사들이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카풀 규탄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개인택시조합 소속 택시 운전기사들이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카풀 규탄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당정 협의회에서 사납금 폐지와 월급제 얘기를 했는데, 그것으로 택시 업계가 달래지지 않나.
그런 것은 카풀 도입과 상관없이 택시 기사들이 찬성한다. 그러나 택시 업계는 월급제가 시행되더라도 카풀 때문에 수입이 줄어들어 회사가 만약 문을 닫으면 택시 그만둬야 할 텐데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런 얘기를 하더라.
참 어려운 문제다.
(주변 의원들이 나를) 다들 불쌍해하고 미안해한다. 또 이 문제는 난제라서 푸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나선 거 아니냐고도 하고. 전국에서 택시 기사로부터 카풀 막아달라는 전화와 문자를 하루에도 수백통 받는다. 또 언론으로부터는 ‘왜 정치권이 카풀을 막느냐’는 항의도 받는다.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의 입장도 조율이 쉽지 않다. 난제 중 난제다.
전현희 의원이 14일 국회 앞 고(故) 최우기 택시 기사 분향소를 찾았다가 택시 기사들에 둘러싸여 있다. 윤성민 기자.

전현희 의원이 14일 국회 앞 고(故) 최우기 택시 기사 분향소를 찾았다가 택시 기사들에 둘러싸여 있다. 윤성민 기자.

속수무책(束手無策)

전 의원은 오후 1시 국회 앞에 자리 잡은 고(故) 최우기 택시 기사 분향소를 찾았다. 일부 택시 기사는 “민주당 평생 찍었는데 이제 안 찍는다!”, “조문하지 말라 그래!”라고 외쳤다. 조문을 마친 전 의원이 천막에 들어가 택시 기사들과 얘기를 하는 중엔 한 택시 기사가 천막 안쪽으로 플라스틱 기름통을 던지고, 물을 뿌렸다. 흥분한 택시 기사들이 “대책을 말하라고요! 그래서 ‘카풀을 금지하겠다’ 말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전 의원이라고 계책(計策)이 있는 건 아니었다. 의원실로 돌아와서 전 의원은 자신의 책 『살아가는 동안, 지치지 않도록』의 제목을 가리키며 “요즘엔 좀 지쳐요”라고 했다.

고(故) 최우기 택시 기사의 분신이 충격적이었나.
견디기 힘들 정도로 마음이 아프고 밤잠을 이루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그런 비극이 절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걸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만 하는 것으로도 고통스럽다.
대중 인지도가 낮은 정치인으로서 이번 일을 잘 마무리할 경우 정치적 기회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대중 정치인으로 많이 알려지는 것을 사실 바라지 않는다. 강남에서 어렵게 당선됐고, 어떻게 보면 기적의 역사를 썼는데 ‘국회에서 너무 조용한 거 아니냐’ 하는 사람도 있다. 조용히 내실 있게 제 역할을 묵묵히 하는 게 내 스타일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정치적 도약을 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나는 조용히 있는 게 좋다.
 전현희 의원이 14일 국회 앞 고(故) 최우기 택시 기사 분향소를 찾아 택시 기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윤성민 기자

전현희 의원이 14일 국회 앞 고(故) 최우기 택시 기사 분향소를 찾아 택시 기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윤성민 기자

이문목견(耳聞目見)

전 의원실엔 정연아 이미지테크 대표의 글 ‘매력은 설득이다’가 액자로 걸려 있다. “그녀(전 의원)의 부드러운 화법에서는 친화력이 묻어난다”,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성품까지 갖춘 정치인” 등의 칭찬이 담겨 있는 글이다. 전 의원은 인터뷰 내내 눈을 마주쳤고, 목소리 톤이 높아지지 않았다. 이날 오전 전국민주택시노조연맹 소속 택시 기사 2명이 의원실로 찾아왔을 땐 1시간 정도 대화를 한 뒤 의원실 앞까지 배웅했다. 그는 요즘 “많이 만나고 많이 듣는다”고 했고, 자신의 장점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다”고 말했다.

너무 택시 업계 쪽 얘기만 듣는 거 아닌가.
그렇지 않다. 요즘 일정은 끊임없이 카풀 문제와 관련된 분을 만나는 것이다. 택시 업계도 있고 카풀도 있고 정부도 있다. 다만 택시 업계가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고, 그분들 의견이 중요하기 때문에 택시 기사와 만남이 상대적으로 언론에 부각되고 이슈가 되고 있을 뿐이다.
 전현희 의원이 1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국민주택시노조연맹 소속 택시 기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윤성민 기자

전현희 의원이 1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국민주택시노조연맹 소속 택시 기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윤성민 기자

이제는 의견을 듣는 단계를 지나 카풀 도입의 연착륙 방안을 고민할 때다.
택시 업계가 여전히 카풀 도입에 반대하고 있지만, ‘카풀 허용 시간대를 출퇴근 각각 2시간씩으로 제한하자’는 안을 ‘검토는 할 수 있다’고 하는 정도까지 의견 진전이 된 상태다. (※정부안은 카풀을 하루 2회로 제한하자는 방안을 담고 있다.) 시간대를 제한하는 안이 현실적으로는 합리적인 중재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시범 서비스 틀을 갖춰서 일단은 카풀 서비스를 시작하고 택시 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분석한 뒤 제도적 대책을 만드는 방식이 어떨까 싶다.
당정 협의회에서도 ‘시간대 제한’ 방안이 논의됐나.
일부 있었다. 정부가 시간대 제한은 어렵다는 강경한 입장이었는데, 오늘 아침 논의에서는 ‘검토는 할 수 있다’는 약간은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전현희 의원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택시ㆍ카풀 TF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전현희 의원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택시ㆍ카풀 TF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양편공사(兩便公事)

이날 전 의원의 발언이 논란이 됐다. 당정 협의회가 끝난 뒤 택시 기사 월급제 도입에 대해 한 기자가 “월급은 250만원 정도냐”라는 질문하자, 전 의원이 “대략 추정하면 그 금액이나 그 금액보다 좀 더 많이 되지 않을까”라고 답한 게 문제였다. 정치권이 택시 임금까지 개입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 정도로 카풀은 예민한 문제다. 이해 관계자의 의견을 충분히 듣는다고 해도 공평하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택시 기사 월급 250만원 발언이 논란이 됐다.
금액을 언급하지 않았다. 내가 말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거든. 어떤 기자가 ‘이런 금액이 되느냐’고 했고, 그 이상이 되면 좋겠다 생각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13일 기자 간담회에서 오는 20일 대규모 택시 업계 집회 전에 사회적 대타협을 하겠다고 말했다.
20일 전에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그날 집회가 과격해지고 불행한 사고가 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 문제 해결하는 게 더 어려워지고 합의의 길은 멀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가급적 집회를 하기 전에 어느 정도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서 정리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 많이 소통해 합의를 하겠다. 그게 희망 사항이다.
서울개인택시조합 조합원이 14일 오전 서울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열린 '카풀 규탄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 중 도로에 누워 카풀 앱 영업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개인택시조합 조합원이 14일 오전 서울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열린 '카풀 규탄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 중 도로에 누워 카풀 앱 영업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까지 사회적 대타협 가능성은 어느 정도로 보나.
강남을에 출마할 때 당선이 불가능하다고 다들 얘기했다. 선거라는 게 표를 얻는 거고, 표를 얻는 거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는 건데, 하늘도 움직이는데 사람 마음 움직이는 거 못하겠느냐 생각했다. 실제로 됐다. 지금 이 일은 정성을 기울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정성을 가지고 마음을 얻고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뢰를 기반으로 대화하면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양쪽 모두를 만족하게 할 수는 없다. 미움받을 용기를 내야 하는 결단의 순간이 필요하다. 그 결단의 순간, 올해 안에 오나.
(결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올해 안에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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