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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고용없는 노동정책→일자리 정책으로 변환…난제도 수두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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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고용노동정책이 전환할 조짐이다. 고용없는 노동에서 일자리 창출 쪽으로다.

고용부 업무보고, 일자리 창출에 방점 #노동계 요구 실현 일색이던 이전과 차이 #"최저임금, 경제상황 반영해 결정 할 것" #기존 최저임금 결정, 오류 인정한 셈 #공익위원 등 정부 입김 배제장치 필요 #탄력근로제 확대, 구체적인 방안은 안 내놔 #"현장의 시급성 모르는 것 같다" 비판도 #ILO 핵심 협약 비준도 현실성 논란 이어질 듯

현 정부는 출범 초 일자리 정부를 표방했다. 그러나 경제와 고용사정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겉으론 일자리 정책이었지만 실제는 노동계 요구를 정책에 접목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이다. 노동존중을 표방하면서다. 시장의 원리는 사실상 배제됐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에게 지불능력이 있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최저임금을 올렸다. 근로시간을 단축하면서 탄력근로제 확대와 같은 유연한 근무체계에 대해선 꽁꽁 묶었다. "근로시간 단축의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김영주 전 고용노동부 장관)는 이유를 댔다.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일자리를 늘리는 면에서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고용정책에 대한 실패를 자인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내년부터 확실히 가시적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저임금의 부작용에 대해선 고용부 공무원에게 묻기도 했다. 정책 실무자의 입을 빌어 여론을 수용, 정책 전환을 꾀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한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2019년 업무보고를 마친후 고용노동부 내 근로기준정책과를 방문해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2019년 업무보고를 마친후 고용노동부 내 근로기준정책과를 방문해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내년 고용부의 업무 보고에서도 이런 기류를 읽을 수 있다. 보고 첫머리에 "많이 부족하다"고 했다. 2019년 전망에 대해서도 "녹록하지 않다"고 했다. 자동차 등 제조업의 침체와 함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관련) 집회·농성 지속"이라며 노동계의 집단행동을 경계하는 대목도 있다. 전반적으로 지난 노동정책의 비판을 수용하는 모양새다. 그러면서 고용과 일자리 창출 중심으로 방향 전환을 꾀하고 있다. 최저임금 결정 구조 개편,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탄력근로제 확대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뜯어보면 논란거리도 많다.

임서정 고용부 차관은 "현행 최저임금 결정에 사용되는 기준은 객관적인 지표보다는 노사가 교섭하는 형태로 진행된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합의가 쉽지 않고, 시장 수용성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고치기 위해 물가상승률, 경제상승률과 같은 경제상황과 고용목표, 고용에 미치는 영향 등을 지표로 추가해 객관적·종합적으로 따지도록 할 방침이다.

지난 7월 14일 새벽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이 확정돼 류장수 위원장(왼쪽)과 강성태 위원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0.9% 오른 시간당 8천350원으로 결정됐다. 경영계 위원이 빠지고 공익위원과 노동계 위원만 참석해 결정했다.[연합뉴스]

지난 7월 14일 새벽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이 확정돼 류장수 위원장(왼쪽)과 강성태 위원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0.9% 오른 시간당 8천350원으로 결정됐다. 경영계 위원이 빠지고 공익위원과 노동계 위원만 참석해 결정했다.[연합뉴스]

이를 뒤집으면 그동안은 경제·고용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정부가 정한 방침에 따라 최저임금을 결정했다는 말이 된다. 여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게 최저임금위원회의 공익위원이다. 공익위원 선정의 공정성, 정부 입김 배제 장치 마련 등을 두고 논란이 불가피하다.

탄력근로제도 확대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다, 이전과는 분명 다르다. 그러나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합리적으로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모호한 문구뿐이다. 당장 보름여 뒤면 근로시간단축 유예기간이 끝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현장의 시급함을 아직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안에 ILO 핵심협약 비준도 마무리할 계획이다. 고용부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공익위원안을 바탕으로 논의해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경사노위공익위원안이 현실에 부합하느냐다. 공무원이 집단연가투쟁으로 사실상 파업하거나 실업자가 노조에 영향력을 행사하면 기업 단위 노사 관계가 혼란을 겪을 수 있어서다. 부당노동행위 폐지, 대체근로 허용, 임단협 유효기간 법적 규제 폐지 또는 연장을 놓고도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할 전망이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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