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과반수 "내년 긴축경영…사람 줄이고 투자 축소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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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왼쪽)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달 9일 오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공정경제 전략회의에 참석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왼쪽)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달 9일 오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공정경제 전략회의에 참석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연 매출 3000억원 규모의 A건설사 대표는 요즘 외부 인사와 만날 때 호텔 대신 해장국집을 찾는다. 회사가 부담하는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최고경영자(CEO)로서의 체면을 내려 놓은 지 오래됐다. 그는 “몇 년 전부터 건설 경기 침체로 수주가 급감해 경영난을 겪고 있다"며 "내년에는 상황이 더 어려울 것으로 보여 대규모 구조조정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총 '최고경영자 2019년 경영전망 조사' #경기침체 장기화 예상 때문

국내 최고경영자 중 과반수가 내년에 긴축경영을 할 계획인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 침체 탓에 인력을 줄이고 신규 투자를 자제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는 의미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최근 244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2019년 경영전망 조사'를 해 보니 50.3%가 긴축경영을 하겠다고 응답했다고 11일 밝혔다. 30.1%가 현상유지를 하겠다고 했으며 확대 경영을 하겠다는 최고경영자는 19.6%에 불과했다.

경총 관계자는 “지난해(2018년 전망) 조사에선 현상유지가 지배적이었지만, 올해 조사에선 긴축경영 기조로 전환됐다”고 설명했다. 이 기간 긴축경영 응답 비율은 39.5%에서 50.3%로 10.8%포인트 증가했다. 해마다 실시하는 경총의 '최고경영자 경영전망' 조사는 2011년 확대경영 기조를 나타낸 이후 8년 연속 현상유지나 긴축경영 기조를 보이고 있다.

경총의 최고경영자 경제전망 조사 [사진 경총]

경총의 최고경영자 경제전망 조사 [사진 경총]

내년 긴축경영을 시행할 방안으로는 원가 절감(34.8%)이 가장 많았다. 인력부문 경영 합리화(22.3%), 신규투자 축소(19.3%), 사업 구조조정(10.6%), 생산 규모 축소(6.2%) 등이 뒤를 이었다. 정부는 그동안 기업에 "투자하라" "채용하라"고 독려했지만 계속된 경기 침체 탓에 기업은 허리띠 졸라매기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69.4%는 현재 상황을 장기형 불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경기 저점(11.2%), 고점 통과 후 점차 하락(14.5%), 저점 통과 후 회복국면 진입(5.0%) 순이었다. 지난해 조사와 비교하면 장기형 불황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20.3%포인트나 늘었다. 또 경기 침체가 2년 이상 이어질 것으로 보는 비관적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국내 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되는 시점을 묻는 말에 2021년 이후(60.3%)가 가장 많았고, 2020년 이후(28.1%), 2019년(11.6%) 등이 뒤를 이었다.

경총의 '최고경영자 2019년 경제전망 조사' 중 현 경기상황 평가 [사진 경총]

경총의 '최고경영자 2019년 경제전망 조사' 중 현 경기상황 평가 [사진 경총]

경기 침체에 기업이 긴축 경영으로 대응하면 생산 감소,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고 불황의 골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경제가 분명하게 악순환에 빠지고 있다"며 "이 상태를 방치하면 경제는 더는 성장이 아니라 쪼그라드는 추세로 가게 된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는 말로만 할 게 아니라 기업이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과감하게 규제를 완화해 투자 등을 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보조금을 주는 식의 시장 개입 정책은 땜질식 처방이므로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영자 과반수 "내년 경영성과 올해보다 감소할 것"

또 CEO 절반가량은 내년 실적이 악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응답자의 54.1%는 내년 경영성과가 올해보다 감소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유사할 것이라는 전망은 29.1%, 개선 전망은 16.8%였다.

 정부의 친노동정책이 경영 활동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힌다. 응답자의 30.3%는 노동정책 부담(최저임금 인상·근로시간 단축)이 애로사항이라고 답했다. 이 밖에도 내수부진(23.4%), 미·중 무역분쟁(15.1%), 유가 등 원자재 가격 불안(9.8%), 반기업 정서 확산(7.1%) 등이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장애물로 지목됐다.

특히 근로시간 단축 부담이 기업을 옥죄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날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발표한 '주 52시간 근로시간제 기업실태' 에 따르면 응답 기업 317곳 중 71.5%가 "근로시간 단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 기업은 근무시간 관리 부담(32.7%), 납기·R&D 등 업무차질(31.0%), 추가 인건비 부담(15.5%), 업무 강도 증가로 직원 불만(14.2%) 등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기업 부담이 가중되자 정부는 이달 31일로 종료되는 '주 52시간 근무제 위반 처벌 유예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계는 내년 1월 ‘최저임금 폭탄’도 우려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최저임금 산정기준 시간을 계산할 때 소정근로시간(실제 일한 시간)에 주휴시간(일하지 않았지만 유급으로 산정되는 시간)을 더하는 것을 명문화하는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을 강행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대기업보다 대응 여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중소기업은 더욱 힘들다"며 "정부는 시간이 지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선제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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