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김씨 모자 상봉, 납북자 문제 해결 전기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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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이 김씨의 모자 상봉을 전격 허용한 배경에 대해 구구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 의도가 어떻든, 졸지에 아들을 잃고 통한의 세월을 보내 온 팔순 노모의 단장지통(斷腸之痛)을 생각한다면 북한의 조치는 일단 환영할 만하다. 어떤 정치적 고려도 혈육의 정이라는 천륜에 우선할 순 없는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김씨는 일본인 피랍 여성인 요코타 메구미의 남편으로 돼 있다. 일본은 DNA 검사까지 하는 집요한 추적 끝에 김씨와 메구미가 부부 사이라는 것을 밝혀 냈다. 북한은 메구미가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피해자 가족은 믿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도 메구미 건을 총 16명에 달하는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 해결의 열쇠로 보고 있다. 따라서 일본이 김씨 모자 상봉의 정치적 이용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김씨가 자신은 자진 월북한 것이며, 메구미는 죽은 게 맞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전쟁 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자들'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고집할 만큼 납북자 문제에 대한 언급 자체를 금기시해 왔다. 그런 북한이 김씨의 모자 상봉을 허용한 것은 납북자의 존재를 사실상 처음으로 인정한 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정부가 파악한 납북자만 489명이다. 북한이 가뭄에 콩 나듯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이들을 찔끔찔끔 끼워 넣고 큰 선심이나 쓰는 것처럼 생색을 내거나 대가를 요구하고, 정부는 그나마 감지덕지하다는 듯한 태도를 보여서는 납북자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 납북자 문제는 본질적으로 인도적 문제고, 근본적 해결책은 원상회복이다. 김씨 모자의 상봉은 납북자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일대 전기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