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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즐겨읽기] 시골로 간 벤처CEO '새와 살기' 벤처 인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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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새들아, 집 지어 줄게 놀러오렴

이대우 지음, 도솔오두막, 236쪽, 1만2000원

일류 중.고교와 명문대 법대를 나와 언론사 기자, 벤처기업 CEO 등을 지낸 50대 중년 남자가 어느 날 아내와 함께 강원도 산골로 들어갔다. 그것도 "한강이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조망 좋은 큰 평수의 아파트"를 팔고서…. 요즘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귀농? 아니, 남자는 새집을 짓기 시작했다. 새 집이 아니라 새집. 남들이 쓰다 버린 목재를 구해다 망치로 손가락을 잘못 찧는 실수를 저지르며 한 개 두 개 만들기 시작한 것이 130점이 넘어 2004년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남자가 만든 새집에는 박새.곤줄박이.딱따구리 등 조류도감에서나 보던 새들이 깃들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새와 자연과 더불어 산 지 8년이 훌쩍 넘었다. '새들아, 집 지어 줄게 놀러오렴'은 꿈으로만 그리던 시골 이주를 단행한 뒤 인생 2모작에 성공한 부부의 이야기다. '자연으로 회귀하자'며 거창한 사상을 말하려는 것도 아니요, '돈과 명예 부질없더라'는 허무주의를 설파하려는 것도 아니다. 단지 "조금만 생각을 바꿨더니 우리 부부는 만족하며 살고 있다"면서 담백한 황혼 풍경을 보여줄 뿐이다. "조금 배고픈 듯 해야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도 갖고 나누고 베푸며 산다"는 고백에서 삶의 연륜이 느껴진다. 이들이 '황혼의 무대'로 선택한 곳은 평소 눈여겨 봐두던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흥정계곡. 지은이는 "개와 얘기를 나누고 자수 놓기 삼매경에 빠지고 자그마한 화단에서 자라는 산딸기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소박하고 단순한 삶"(93쪽)이 시골 생활이라고 말한다. 아내는 서울 친구들이 연락하지 않는다며 간혹 투덜대지만 이웃들이 붙여준 '봉평댁'이라는 호칭에 만족해한다.

책은 노후를 어찌 보낼까 고민하는 이들이 참고할 구절이 적지 않다. 다 접은 뒤 시골 내려갈까, 이런 생각 한 번 안해 본 사람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은이는 시골에'나'라는 얄팍한 발상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발상의 전환 없이 도시 생활에 젖은 버릇 그대로 갖고, 어울리지 않는 저택부터 짓고 살아 봐야 몇 달을 버티기 어렵다"(111쪽)는 것이다.

마음가짐이 준비됐으면 그 다음은 뭔가 몰두할 일을 찾아야 한다. "특히 겨울철에 어떻게 즐겁게 노동하며 창조적인 활동을 하느냐가 시골 생활의 승패를 좌우한다"(98쪽). 그가 새집을 짓게 된 것은 바쁜 샐러리맨 시절 언젠가 꼭 목공 일을 해보리라 마음에 품었던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흥정계곡의 하루는 24시간 이상으로 길다.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고 "어떤 작업을 하든, 책을 읽든 음악을 듣든 시간에 쫓기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그랬던가,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은 '마음 먹기'라고.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을 해낸 이의 여유가 느껴지는 책이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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