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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피트 반한 우주여행···한국도 달 정거장 타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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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권혁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권혁주의 직격 인터뷰] ‘천리안 2A호’ 성공시킨 임철호 항공우주연구원장

임철호 항공우주연구원장이 한국형 발사체와 기상위성 천리안 2A호 모형을 들고 개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시험에 성공한 누리호는 3단 로켓인 한국형 발사체 중 가운데 2단 부분이다. [프리랜서 김성태]

임철호 항공우주연구원장이 한국형 발사체와 기상위성 천리안 2A호 모형을 들고 개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시험에 성공한 누리호는 3단 로켓인 한국형 발사체 중 가운데 2단 부분이다. [프리랜서 김성태]

임철호(66)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원장을 만난 건 지난 5일 대덕연구단지의 원장실에서였다. 그 날 그는 오전 5시에 출근했다. 프랑스령 기아나에서 이뤄진 기상위성 ‘천리안 2A호’ 발사를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오전 5시 37분(한국시간)에 발사하고 약 40분 뒤 첫 교신에 성공했다. 임 원장은 “올해 3종 세트를 무사히 치러낸 것 같다”고 말했다. 3종 세트란 지난달 28일에 있었던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시험, 이달 4일의 초소형 위성 발사, 그리고 5일의 천리안 2A호 발사를 말한다. 묘하게도 시기가 1주일 새로 몰렸다. 임 원장은 “3종 세트를 마쳤지만 사실은 이제 시작”이라고 덧붙였다.

우주 개발은 기술국만의 리그 #참여 국가만 정보·신기술 독점 #정거장 건설은 미국이 공식 제안 #한국 우주기술 국제적 인정 의미 #우주 사업은 산업 파급효과 막대 #누리호 제작에 300개 기업 동참 #5일 발사 위성은 본체 독자 개발 #내년엔 환경·해양 위성 궤도에

이제 시작이란 무슨 뜻인가.
“발사체 개발 목표는 2022년에 3단 로켓을 만들어 인공위성을 띄우는 것이다. 이번에는 3단에서 가운데인 2단 로켓의 성능을 시험했을 뿐이다. 앞으로도 계속 연구와 시험, 준비를 해야 한다. 실제 나로도(전남 고흥군)에서는 누리호 발사 성공 이튿날부터 연구진이 다음 단계 작업에 들어갔다.”
발사 실패 부담은 없었나.
“나로호가 두 번 실패한 적이 있어서…. 매주 점검 목록을 만들어 제대로 되는지 세밀히 파악한 게 성공에 도움이 된 것 같다. ‘동네 공무원처럼 꼬치꼬치 따진다’는 소리도 들었다.”
누리호 발사 성공까지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 같다.
“밖에서 보기엔 화려하다는데 사실 3D 업종이다. 연구개발자들은 집을 떠나 나로도 기숙사에서 살면서 실험과 발사체 조립을 했다. 조립은 공장 근로와 비슷한 육체노동이다. 또 섭씨 3000도에 100기압 같은 위험한 상황에서 실험한다. 자칫 폭발할 수도 있다. 여기에 미친 사람들이 있기에 해내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발사체 개발을 총괄한 고정환(51)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은 “견디다 못해 그만둔 젊은 미혼 연구원도 있다”고 전했다. 주중에는 나로도에서 일하고 주말에만 집에 가는 생활을 반복하다가 “이러다가는 도저히 결혼할 수 없겠다”며 이직했다는 것이다. 대전의 연구원에서 나로도까지 장시간 운전을 거듭하는 바람에 허리 디스크가 생겨 치료 중인 연구원도 있다고 했다. 다시 임 원장에게 물었다.

만만찮은 도전이다. 엄청난 예산도 소요된다. 그러면서 발사체를 개발하는 이유가 뭔가.
“우선 안보에 중요하다. 발사체 없이 우리가 필요할 때 안보용 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겠나. 또한 발사체는 우주 개발의 첫걸음이기도 하다.”
우주 개발이 왜 중요한가.
“산업 파급 효과가 크고, 신산업을 창출할 수 있으며, 자원 문제 등의 해결책이 될 수 있어서다. 2010년 개발을 시작한 누리호 발사체를 보자. 2022년에 위성을 탑재한 3단 로켓을 쏘아 올릴 때까지 약 2조원이 든다. 그중 90% 가까이가 약 300개 기업에 돌아간다. 항우연은 주로 설계만 맡고 기업에 제작을 맡기는 구조라서 그렇다. 우주 프로젝트에는 이렇게 수많은 기업이 참여한다. 그 과정에서 기업들이 초정밀 기술을 개발하고 전수받는 것 또한 큰 파급 효과다.”
우주 개발로 어떤 신산업이 생길 수 있나.
“미국 서부 모하비 사막에는 우주여행 업체가 10곳 이상 들어서 있다. 고도 100㎞를 넘어 우주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들 있다. 요금은 20만 달러(약 2억2000만원) 정도다. 영화배우 앤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 등이 예약했다고 한다.”
우주여행 수요가 많을까.
“200억원을 내고 우주정거장에 갔다 온 백만장자도 있지 않나. 20만 달러 우주여행에는 벌써 수백 명이 줄을 섰다고 한다. 스티븐 호킹 박사도 예약했다가 타계했다. 예약금 2만 달러를 냈다던데…. (※2001년 미국인 사업가 데니스 티토가 러시아 우주선 소유스를 타고 우주정거장에 갔다. 요금은 2000만 달러였다.)”
우주 자원개발이 정말 가능한가.
“유럽의 룩셈부르크는 국가 차원에서 ‘스페이스 리소시즈(space resources)’란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소행성에서 자원을 캐는 것이다. 올초 스페이스 리소시즈 회의에 항우연도 초청받아 갔다. 김승조 전 항우연 원장이 룩셈부르크 정부의 우주 자문위원으로 있다. 소행성에서 백금 같은 광물을 캐오겠다고 하더라.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그런 광물이 있는 소행성을 찾아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텐데.
“관련 기술이 더 발전해야 가능할 것이다. 우주 자원 개발 같은 사업을 하려면 투자금이 모여야 한다. 언젠가는 투자자를 설득할 만큼 기술이 발달할 수 있다고 룩셈부르크는 생각하는 것 같다.”
미국이나 러시아·일본 등에 비하면 한국의 우주 기술은 걸음마 단계다. 우리가 뒤늦게 우주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우주 개발은 워낙 돈이 많이 드는 프로젝트라 여러 나라가 힘을 합치는 게 보통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화성 탐사선 인사이트호에도 프랑스 회사 등이 참여했다. 어느 정도 기술을 인정받으면 우주 개발에 동참할 수 있다. 발사체 기술 확보가 꼭 필요한 또 다른 이유다.”
우주 사업에 필요한 기술을 키우지 않고 지분 투자만 해도 돈을 벌 수 있지 않나.
“그렇게 하면 우주 개발에 직접 참여했을 때 얻는 새로운 정보와 기술을 확보할 수 없다. 그건 철저히 직접 참여하는 나라들만 공유할 것이다. 우주 개발은 ‘그들만의 리그’다.”
미국은 2022년에 달 주위를 도는 우주정거장을 건설한다. 한국에 참여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제안을 해 와 논의 중이다. 한국의 우주 기술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마음 같아서는 모듈(선실 등 우주정거장을 구성하는 한 부분) 하나를 통째로 만들고 싶은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작은 부분 참여부터 차근차근히 할 생각이다.”
미국은 나아가 2030년 화성에 사람을 보내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지구는 꽉 찼다. 인구는 엄청나게 늘었고 자원은 부족하다. 언젠가 미래에 인류 일부는 우주로 이사해야 할 수도 있다. 가장 유력한 후보지가 지구에서 제일 가까운 화성이다. 먼 훗날을 위해 가능성을 보는 차원이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화성 탐사 같은 우주 개발에 매진하는 것은 우주 패권 경쟁이란 측면도 있다.”
무슨 뜻인가.
“60년대 미국은 당시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에 자극을 받아 우주 개발에 나섰다.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에 상처를 입었다. 이번에는 상대가 중국이다. 중국은 이미 달에 우주선을 보냈고, 우주정거장도 만들려고 한다. 군사·경제적 측면에서 미국이 중국의 도전을 두고 보지 않고 압박하듯, 우주에서도 패권을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우리나라는 2020년 달에 궤도선(달 주위를 도는 우주선)을 보내고 2030년에는 달에 착륙하는 게 목표다. 달성할 수 있을까.
“2020년 궤도선은 추진 중이다. 하지만 2030년 달 착륙선은 아직 선언적인 의미가 크다. 궤도선 성공의 다음 목표를 이것으로 잡고 있다는 정도다.”
정부가 세운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에 우주인 양성은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는 우주인이 필요하다. 일본은 20여 명이 우주에 갔다 왔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아닌 것 같다. 한국형 발사체가 성공하고, 거기서 파생된 기술이 기업에 넘어가 우주 산업이 생기고 난 뒤쯤에 우주인을 키우게 되지 않을까 한다. 우주인을 우리 기술로 우주에 보내는 건 사실 굉장히 큰 프로젝트다. 생명유지 장치 기술 등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 장치 때문에 우주선은 훨씬 크고 무거워진다. 그걸 쏘아 올릴 만큼 발사체 기술도 발전해야 한다.”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박사가 미국으로 가 버렸던 일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가.
“한때 그런 일이 있었다.”

항우연은 4일과 5일에 연달아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다. 4일은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 5일은 유럽의 아리안 스페이스에 의뢰해 발사했다. 구체적인 금액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5일에 3.5t 위성을 쏘는 데만 700억~800억원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큰 비용은 발사체를 자체 개발해야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지난 4일에 초소형 위성을 띄웠다.
“10~20㎏짜리 초소형 위성 4개를 궤도에 올렸다. 공모를 통해 대학생들이 만든 것이다. 모두 실제 작동하는 위성이다. 카메라로 관측할 수 있고, 통신도 할 수 있다. 미국은 화성 탐사선 인사이트를 보내기 전에 초소형 위성 2기를 화성 궤도에 띄웠다. 인사이트는 이 초소형 위성을 통해 지구와 통신한다.”
5일 발사한 천리안 2A는 어떤 의미가 있나.
“성능이 훨씬 좋아진 기상 위성이다. 일기 예보 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황사와 미세먼지도 감시한다. 항우연 입장에서는 위성 본체를 순수 우리 기술로 제작했다는 의미가 있다.”
위성으로도 신사업을 할 수 있나.
“원 웹(One Web)이라는 업체는 위성 수백 개를 띄워 전 세계 통신망을 연결하려 하고 있다. 굳이 엄청난 돈 들여 통신 위성을 쏘지 말고, 자기네들한테 소정의 돈을 내면 서비스해주겠다는 거다. 한꺼번에 수백 개 위성을 만드니 제작 단가가 10분의 1로 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사업을 할 수 있을 만큼 경제성이 생겼다.”
천리안 2A 다음 단계는 뭔가.
“내년에 환경·해양 위성을 발사한다. 성능이 향상된 차세대 위성도 개발 중이다. 발사체 역시 완성해야 한다. 올해 3종 세트를 치렀지만, 그래서 이제 다시 시작이다.”

임철호 원장은 …

고교 시절인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는 소식을 라디오로 들었다. 그 날 집에서 밥을 먹다가 달을 쳐다보고는 항공우주 분야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강연할 때는 늘 “공상과학(SF) 소설을 많이 읽으라”고 강조한다. 임 원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상상력을 키우라는 뜻이다. 상상력이야말로 창의성의 원동력이다. 앞으로는 어떤 조직이든지 상상력을 보고 채용 여부를 판단할 것이다.” 전주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항공공학과를 나왔다. 박사는 프랑스 툴루즈 제3대학교에서 받았다. 항공우주연구원 스마트무인기 사업단장을 거쳐 2011년 부원장이 됐고 올 초 원장에 취임했다.

권혁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