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왜 희생양 돼야 합니까"|사퇴압력 받는 정호용의원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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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나는 물러나지 않습니다. 내가 물러 나는게 사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대통령도 그걸 바라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야당측으로 부터 5공 핵심관련인사로 지목돼 공직사퇴여부가 정치쟁점으로 부각돼있는 민정당의 정호용의원은 의원직 자진 사퇴설을 일축했다.
23일 오전 자택에서 기자들의 방문을 받은 정의원은 『광주사태의 최고책임자로 내가 지목되는 것은 어부성설』이라며 『언론도 여론재판을 하여 생사람 잡는 일은 없어야 할 것』 이라고 자신의 이름이 자꾸 거명되고 있는 자체를 못마땅해했다.
-야당쪽에서 광주사태의 책임을 물어 정의원의 처벌을 요구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말도 안돼요. 지휘계통부터 따진다면 엄연히 지휘자들이 따로 있는데 그들을 제쳐놓고 나에게 책임을 지운다는 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청문회에서도 충분히 밝혀진 사항이지만 그때 공수부대는 내 지휘권범위를 떠나 있었습니다.
나의 부대가 참여했다는 점에 도의적 책임을 느끼지않는 것은 아니나 실질 책임자부터 조치가 이뤄진 연후에나 생각할 사항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왜 야당측이 정의원을 지목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결국 일종의 정치거래인 셈이죠. 그러나 내가 왜 정치거래의 희생양이 돼야 합니까.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항간엔 교착정국을 풀기 위해 노태우 대통령이 정의원에게 「협조」를 요청할 것이란 소문이 있는데요.
『그렇다면 그거야 거역할 수 없겠지요. 대통령이고 내가 소속된 당의 총재이신데…. 그러나 대통령은 그런 협조요청을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물러나서 정국에 큰 도움이 된다면 몰라도 무슨 도움이 있겠습니까. 과거가 덮어지고 4당 협조가 잘되고 그런 전망만 선다면 나도 물러날 것이고 대통령도 요청할 것입니다만.
국회의원은 지역주민이 뽑아 준건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노대통령의 뜻을 직접 들은 적이 있나요.
『아직은 없지만 그러한 목으로 눈빛도 비치지 않고 있으십니다.
곧 대통령을 만나 뵐 생각입니다. 대통령도 정치를 하다보니 희생양을 만들 필요도 있을지 모르나 나를 상대로 협조요청을 하지는 않으리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여권 내부에서도 사태해결을 위해 정의원의 탈당과 의원직사퇴를 거론하는 사람이 있다는데요.
『노대통령에게 그런 건의를 한 사람도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꼬인 정국을 풀려다보면 이런 저런 방책이 나올 수 있고 그런 쪽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않겠어요.』
-정의원과 함께 거론되고 있는 이원조의원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광주문제는 사법처리가 곤란하니까 정치적 해결이 논의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5공 청산문제는 정치거래가 아닌 사법적 처리로 해결해야합니다.
평생동지란게 뭡니까. 본인도 그런 봉변을 덮어쓰는걸 원치 않을겁니다. 5공 핵심인사라는 리스트를 누가 누구 허락을 받고 만든건지 모르겠어요. 진짜 리스트를 작성해 볼까요. 아마나는 백번째쯤 들어갈지….』
-김용갑 전총무처 장관의 사퇴를 전후해 만난 적이 있습니까.
『그 사람 심정을 잘 압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야 자기 생각대로 할 수 있겠지만 나는 내 개인 의사대로 할 수 없는 대목도 있습니다. 내가 지금 사퇴하면 야당이 주장하는 광주관련문제가 모두 맞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인데 이게 과연 어려운 문젭니다. 그렇지 않다는 쪽으로 생각하는 많은 국민과 또 군인들은 얼마나 실망이 크겠어요. 생명을 던져 임무를 수행한 군인들은 설 땅이 없게됩니다.
장관자리라면 아마 내 성격을 잘 알겠지만 그만둬도 벌써 그만 뒀을 겁니다. 감투쓰고 싶어 안달하는 것도 아니고 의원을 마르고 닳도록 하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중간평가를 정면돌파로 실시해야한다는 목이었죠. 『그쪽이 좋다는 생각했으나 걸리는 게 많아 어려운 점도 많겠구나 하고 생각해 아무 얘기도 안했습니다.』
-노대통령이 야당총재들과 중간평가문제를 상의할 때 정의원 문제를 거론한 걸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야당총재들이 얘기했겠죠. 그러나 내가 물러나면 노대통령의 입지가 약화되는 등 전혀 도움이 안됩니다. 노대통령이 자꾸 밑에 있는 사람 잘라낸다는 비난을 받게 될 수도 있고….』
그는 지난 21일 김윤환총무와 만났고 그 자리에서 공직사퇴문제가 거론되지 않았느냐고 묻자 『김총무는 그런 합의를 한 적은 없었고 야당측이 요구하더라는 얘기는 하더라』고 실토하면서도 『그러나 내가 다른 일이라면 몰라도 경우에도 맞지않는 야당요구 때문에 정치적 희생양이 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해줬다』고 못박았다.
그는 최근 노대통령의 처남이자 막후실력자의 한사람으로 통하는 김복동씨가 외신기자들과 회견, 그의 공직사퇴를 요구하는 듯한 발언을 한데 대해 『글쎄, 나로서는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며 언급을 회피하려했다.
한 측근이 곁에서 『바깥에는 JP와의 소문 등이 돌아다니고 있다더라』고 거들었으나 그는 힐끗 돌아봤을 뿐 아무소리도 하지 않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기자들을 배웅하며 그는 혼잣소리처럼 흘렸다.
『한번 물러서면 계속 밀리게되지….』 <허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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