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선2035

A 보험사 K 부장님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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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윤정민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윤정민 산업팀 기자

윤정민 산업팀 기자

안녕하세요. 얼굴도 모르는 부장님께 편지를 씁니다. 저는 부장님 후배 K 대리의 친구입니다. 원래 전 ‘꼰대의 필수불가결성’에 대해 쓰려 했습니다. 꼰대는 절대 악인가, 꼰대 없는 사회는 천국인가에 대해 작은 의문을 갖게 됐거든요. 그런데 부장님 때문에 계획을 바꿨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얼마 전 B 기업의 C 차장님을 만났습니다. 저보다 10살 정도 어른이지만 대화할 때 특별히 세대 차이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웃음 코드도, 고민이나 시각도 비슷했죠. 결코 꼰대 같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요즘 후배들이 꼰대 취급을 한다”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밖에선 누구든 잘 어울리는데, 이상하게 후배들과는 마음 터놓고 어울리기 어렵다면서요.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줘도 매번 탐탁지 않은 반응만 돌아왔다고 합니다. “특별히 기분 상할 말을 한 것 같진 않아요. 동료들과 자주 부딪친다기에 ‘가끔 시간이 되면 따로 자리를 가지며 인간적으로 친해지는 건 어떻겠냐’ 정도로 조언했을 뿐이죠.” 그의 말입니다.

좀 안타까웠습니다. 꼰대란 말이 주는 공포 때문에 최소한의 소통도 피하게 된 건 아닐까, 후배 입장에서 꼭 필요한 조언마저 듣지 못하게 된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조금씩 들 때였거든요. 또 의욕이 넘쳐 회식 때 자진해서 분위기를 띄우거나, 남보다 더 서둘러 출근하는 직원이 또래들에게 ‘젊꼰(젊은 꼰대)’ 소리를 들으며 왕따를 당하는 걸 보기도 했습니다. 꼰대란 무엇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죠.

그런데, 주말에 친구 K 대리를 만났습니다. 그는 부장님이 지금도 쌍욕과 함께 후배들을 2시간씩 깨고, 그 뒤 ‘격려 회식’에서 같은 노래를 5번씩 시킨다는 말을 해줬습니다. 부장님의 애창곡인 그 노래를, 그것도 후렴구에선 마이크를 뺏어 들고. 술 강요는 밤늦게까지 이어졌을 테죠.

부장님에 대한 이런 얘길 들으니 제가 너무 좋은 상사들만 만나왔으며, 아직 ‘좋은 꼰대’를 논하기엔 시기가 이른 것 아니었나 싶습니다. 좋은 꼰대를 따로 구분하자고 말하기도 어렵네요.

그 대신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친구를 위해 익명 처리했지만, 조금이나마 찔리는 분이 있다면, 제발 자중하세요. 표현은 서툴지만 회사와 후배를 마음 깊이 아끼고, 어떻게 꼰대 소릴 듣지 않으며 후배의 고민도 덜어줄 수 있을지 매일 고민하는, 그런 괜찮은 꼰대들이 부장님 같은 분 때문에 똑같은 꼰대 취급받는 건 부당하니까요. 그들은 조금이나마 후배들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부장님과 달리요.

윤정민 산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