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원의 미스터리… "임무 중지" 보고 직후 사라진 F - 15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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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종 실수인가=F-15K는 추락 당시 야간 요격훈련을 하던 중이었다. 3대를 요격팀 2대와 가상 적기 1대로 나눴다. 추락한 5호기는 요격팀에 편성돼 야간에 공중으로 들어오는 적기를 추적한 뒤 미사일을 발사해 격추하는 훈련을 했다.

이 과정은 오산과 대구의 중앙방공통제소(MCRC)에 교신 내용과 항적, 작전 시간 등으로 모두 기록됐다.

군 당국은 일단 추락 전투기의 교신 내용을 근거로 '조종 착각'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사고기는 1만8500피트 상공에서 적기로 상정한 F-15K에 대한 가상 요격을 완료한 뒤 1만1000피트로 하강했다. 그리고 "임무 중지"라고 마지막 교신을 한 뒤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군 당국에선 조종사가 조종 과정에서 착각을 일으키는 '버티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조사 중이다. 갑작스러운 기체 이상으로 조종 불능 상황이 닥쳤다면 교신으로 급박하게 이를 알렸을 텐데 그런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론도 나온다. 공군에 따르면 사고기의 조종사 고 김성대(36) 소령과 고 이재욱(32) 대위는 공군 내 '베테랑'이었다. 김 소령은 지난해 5개월간 미국 현지에서 F-15K 조종교육을 받은 뒤 귀국해 국내에서 F-15K 교관을 맡고 있었다. 이 대위 역시 높은 경쟁률을 뚫고 F-15K 조종사로 선발된 요원이었다. 경력이나 조종 능력에선 '최고'라는 얘기다.

◆ 기체 이상 가능성도 여전=권오성 공군 정책홍보실장은 "사고기는 지난해 미국에서 30여 차례 야간훈련을 했다"며 "국내 도입 후 훈련에서도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군 당국은 기체 이상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8월 미국 보잉사의 F-15K 시험비행에선 착륙 지시등의 오작동으로 비상착륙한 전례가 있다. 미국의 GE사가 제작한 쌍발 엔진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F-15 계열 전투기에 한 번도 장착된 바 없어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공군은 F-15K의 사고 경위를 조사하기 위해 각종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가장 먼저 확인할 자료는 추락한 5호기와 함께 훈련한 3호기, 4호기의 비행기록이다.

공군에 따르면 F-15K는 같이 작전을 벌인 편대 전투기들과 비행기록을 자동으로 공유하도록 돼 있다. 권 정책홍보실장은 "3호기, 4호기의 컴퓨터에 5호기의 비행기록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군은 또 바다 속에 가라앉은 5호기의 블랙박스를 수거하기 위해 심해잠수사 등을 동원할 계획이다.

권 실장은 "F-15K의 블랙박스는 수심 6700m에서 한달 동안 파괴되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고 말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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