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권양숙'에 털린 윤장현… 그 자녀 취업에도 개입 정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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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장현 광주광역시장. 중앙포토

윤장현 광주광역시장. 중앙포토

경찰, 윤 전 시장, 채용 비리 수사 중

권양숙 여사를 사칭한 40대 여성에게 4억5000만원을 사기당한 윤장현(69) 전 광주광역시장이 사기범의 자녀들 채용과정에 연루된 정황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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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3일 윤 전 시장이 자신에게 사기행각을 벌인 김모(49·여)씨 아들과 딸이 취업하는 과정에 개입한 혐의(직권남용 등)로 불구속 입건했다. 윤 전 시장이 재임 시절 김씨의 아들과 딸이 광주시 산하 공기업과 사립학교 등에 채용되도록 한 혐의다.

윤 전 시장의 채용비리 혐의는 4억5000만원 송금 과정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포착됐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 아들(28)은 광주시 공기업인 김대중컨벤션센터에 7개월 동안 임시직으로 채용됐다가 10월 말 사직했다. 그가 근무했던 부서는 전시회를 준비하는 조직으로 지난 3월부터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김씨의 딸(30)이 일선 학교에 채용되는 과정에서도 윤 전 시장이 부적절한 행위를 했는지도 조사 중이다. 김씨의 딸은 올해 초 광주 모 사립학교에 기간제 교사로 채용돼 근무해왔다. 경찰은 지난달 30일 김대중컨벤션센터와 해당 학교에 수사관을 보내 압수 수색을 했다.

윤장현 광주광역시장. 중앙포토

윤장현 광주광역시장. 중앙포토

사기범의 아들·딸, 광주시 공기업, 학교 취업 

경찰은 김씨 자녀들의 취업 과정에서 윤 전 시장의 개입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해당 기관과 학교의 인사담당자 등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 아울러 압수된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관련 서류 등에 대한 분석 작업에도 착수했다. 경찰은 관련자와 압수 수색 자료 분석을 통해 윤 전 시장이 채용 비리에까지 관여한 과정을 밝힐 방침이다. 윤 전 시장이 수억원의 사기 피해를 본 후 사기범의 자녀들까지 취업을 알선했다는 사실이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찰에 따르면 윤 전 시장은 지난 8월까지도 김씨를 권양숙 여사라 믿고 문자메시지 등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지난해 12월쯤 ‘권양숙입니다. 잘 지내시지요’라는 문자메시지로 보이스피싱을 유도한 김씨의 말을 8개월 이상 믿었다는 것이다. 당시 김씨는 ‘딸 비즈니스 문제로 곤란한 일이 생겼습니다. 5억 원이 급히 필요하니 빌려주시면 곧 갚겠습니다’라며 돈을 보낼 것을 요구했다. 윤 전 시장은 김씨의 말에 속아 지난해 12월부터 4차례에 걸쳐 김씨의 딸 통장 등으로 돈을 보냈다. 시민운동가 출신인 윤 전 시장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한편, 경찰은 윤 전 시장이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한 4억5000만원이 은행 대출금과 지인에게 빌려 마련한 사실을 확인하고 수사를 해왔다. 경찰에 따르면 윤 전 시장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시중은행 두 곳에서 대출받은 3억5000만원과 지인에게 빌린 1억 원을 등을 김씨에게 송금했다.

윤장현 광주광역시장. 중앙포토

윤장현 광주광역시장. 중앙포토

1억원 자금출처·공천대가 여부도 조사

경찰과 검찰은 윤 전 시장이 빌린 1억원의 자금출처와 공천대가 여부 등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윤 전 시장이 사기 피해를 본 시점을 전후로 더불어민주당 광주시장 후보자 공천 경쟁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속된 김씨는 현직 영부인인 김정숙 여사를 사칭해 광주·전남 지역 자치단체장 등에게도 사기 행각을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과 검찰 조사 결과 김씨는 전과 6범의 휴대전화 판매원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채용 비리 혐의가 포착된 윤 전 시장을 보이스피싱 피해자에서 ‘피의자’로 전환하고 출석요구서를 발송했다. 윤 전 시장은 네팔로 출국한 것으로 알려진 후 현재까지 검찰과 경찰의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윤 전 시장은 경찰에서 “김씨를 권 여사인 것으로 믿어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시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광주광역시=최경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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