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시늉만 낸 저출산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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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저출산 문제는 단기 처방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교육과 보육, 취업난, 성차별적 사회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낳은 사회문제라는 점에서 다각도로 해결책을 모색한 방향설정은 맞다.

문제는 개별 정책들의 실효성이다. 뜯어보니 시늉만 낸 정책이 많다. 여성이 아이를 마음 놓고 키우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전체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민간 어린이집의 질적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은 빠져 있다. 슬그머니 내비쳤던 아동수당 지급은 자취를 감췄다. 현행 연차휴가 내에서 배우자 출산휴가를 사용하라는 것도 생색 내기에 불과하다. 더구나 정년 보장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정년 연장을 추진하겠다는 정책은 믿기 어렵다.

가장 큰 맹점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논의해야 할 핵심 의제들이 빠져 있는 것이다. 미혼모와 인공 임신중절, 동거 가족 등에 대한 사회적.제도적 수용 여부는 출산율 제고에 핵심적인 사항이다. 저출산 문제로 수십 년간 고민해 온 서구 국가들의 경험은 이를 대변하고 있다. 외국 이주민의 수용 여부 또한 출산율과 관계가 크다. 사안이 미묘하고 어려워 당장 결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외면하거나 덮어둘 일이 아니라 이제는 드러내놓고 논의해야 한다.

투입하겠다는 32조원의 재원 마련도 불투명하다. 프랑스나 스웨덴 등은 국내총생산(GDP)의 2~3%나 되는 어마어마한 돈을 양육비 지원에 들이고 있다. 과감한 투자 없이 발등의 불인 저출산 문제를 풀기는 어렵다. 더욱 심해지는 저출산 문제를 평이하고 안이한 대책으로 막기 어렵다. 정부는 아직도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확실히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