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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립은 꽉 찼는데 사립은 85곳 문닫아…'유치원 난민' 터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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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제자리 찾기

유치원이 뿔났다. 29일 한국유치원총연합회는 서울 광화문에서 대구모 시위를 했다. 1만명이 참여했다. 사립유치원을 둘러싼 논쟁은 정치로도 번졌다. 더불어민주당은 비리 사립유치원 근절을 위한 이른 바 '박용진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사립유치원의 시설사용료 수입을 인정하는 법안을 다음 달 발의할 예정이다.
문제는 고래싸움에 새우등 신세가 된 학부모와 아이들이다. 우리 애가 다니는 유치원이 언제 없어질지 몰라 발을 동동거리는 학부모, 내년엔 어느 유치원을 보내야할지 걱정인 학부모 등등. 중앙일보는 위기의 유치원 시대를 맞아 유치원 갈등의 정확한 현실과 원인, 대안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

폐원 유치원 전국 85곳으로 늘어 #내년 3월 유치원 난민 발생 우려 #학부모 “정부 대책 탁상공론” 불만 #서로 한발씩 양보해 합의점 찾아야

①‘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정부‧유치원 기싸움에 애끓는 학부모들

②'개인사업자냐 비영리기관이냐'…사립유치원 법적 쟁점은

③‘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무책임 정부, 문제해결하려면 대화부터

유치원 제자리 찾기① 

한국유치원총연합회 회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전국사립유치원 교육자, 학부모운영위원회 총궐기대회를 갖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한국유치원총연합회 회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전국사립유치원 교육자, 학부모운영위원회 총궐기대회를 갖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한국사립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박용진 3법’ 반대를 주장하며 총궐기에 나섰다. 한유총은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사립유치원 설립자와 원장, 학부모 대표 등 1만 여명(주최측 추산)과 함께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설립자의 사유재산 존중하라’, ‘사립유치원 교직원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등의 팻말을 들고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사립유치원 공공성 강화 대책을 비판했다. 이덕선 한유총 비상대책위원장은 “‘박용진 3법’이 통과되면 대부분 사립유치원의 생존이 불투명해지고 학부모의 교육 선택권이 불투명해진다”고 밝혔다.

 한유총은 또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호소문에서 “신뢰와 존중이 바탕이 돼야 할 유치원에 불신과 감시만 팽배하다”며 “이 때문에 많은 학부모와 아이들이 불안과 걱정에 휩싸여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공립 아이들에게는 월 95만원의 혈세를 투입하면서 사립 아이들에게는 32만원만 지원한다, 이것이 대통령이 밝힌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로움’이냐”고 비판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가 22일 대구 황금유치원을 방문해 원생들과 모래 놀이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은혜 사회부총리가 22일 대구 황금유치원을 방문해 원생들과 모래 놀이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엄마, 우리 유치원 없어지면 선생님은 어떻게 돼? 친구들은?”
 박모(38‧서울 도봉구)씨는 얼마 전 여섯 살 아들의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유치원 원장이 학부모들에게 폐원을 통지하긴 했지만 아이들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이 유치원은 사립유치원 비리문제가 불거진 이후 벌써 3차례 학부모들에게 폐원을 통보했다. 유치원이 밝힌 폐원 이유는 원장의 건강 악화다. 도봉구에서만 이곳을 포함해 총 3곳이 같은 이유로 폐원을 예고했다.

 학부모들은 당장 아이 보낼 곳을 찾느라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 박씨는 “아이가 선생님과 친구들을 좋아해서 재원생까지만이라도 졸업하게 해달라고 했지만, 아직까지 답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유치원 문에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 20장이 붙어 있다. 유치원을 지키고 싶은 마음을 담아 ‘친구들아 사랑해, 선생님 사랑해요’라는 글씨도 적혀 있다. 박씨는 “정부와 유치원이 합의가 안 되니 문제가 해결될 리 없고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학부모와 아이에게 돌아온다”고 안타까워했다.

서울 도봉구의 한 유치원에 붙어 있는 아이들의 그림편지들. [중앙포토]

서울 도봉구의 한 유치원에 붙어 있는 아이들의 그림편지들. [중앙포토]

 회계 비리 사태 이후 사립유치원들이 대거 폐원 의사를 밝히면서 내년도 3월에 아이들이 다닐 유치원을 잃은 ‘유치원 난민’이 대거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교육부에 따르면 29일 기준 폐원 의사 밝힌 유치원은 전국적으로 85곳이다. 교육부나 교육청에 신고하지 않고 폐원을 고려 중인 유치원까지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늘어난다.

 현행법상 유치원 설립자가 경영난이나 건강 악화 등의 이유로 폐원하려면 학부모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런 절차 없이 유치원이 무단으로 폐원할 경우 운영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유치원이 폐원을 강행하면 운영을 강제할 방법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립유치원장들 사이에선 “요즘처럼 벼랑 끝에 몰릴 거면 3000만원 내고 폐원하는 게 속편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교육부는 현재 사립유치원이 모집중지‧폐원을 하면 인근 국공립유치원에서 원아를 우선 수용하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한다. 국공립유치원은 사립에 비해 돌봄 시간이 짧고, 아이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서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5‧7세 자녀를 둔 이모(36‧서울 진관동)씨는 “현재 다니는 유치원은 오후 5시30분까지 아이를 돌봐주는데, 인근 국공립은 오후 2시까지밖에 안 한다. 맞벌이 부부는 둘 중 하나가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는 아이를 맡길 수가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유치원 폐원을 앞둔 한 학부모는 “아이에게 ‘다른 유치원으로 옮기자’고 했더니 ‘엄마 말 잘 들을 테니 친구랑 선생님이랑 떨어뜨리지 말아 달라’며 울더라. 유치원이 폐원했을 때 아이가 상처받을 게 벌써 걱정이다”고 털어놨다.

 최근 교육부가 새로운 대안으로 부모협동형 유치원을 제시했지만 현장에선 ‘그림의 떡’이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 경기도 하남시 예원유치원에 자녀를 보내던 학부모들은 폐원 통보를 받은 뒤 협동형 유치원 설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아이들이 생활할 수 있는 시설을 구하지 못해서다. 5살 아들을 예원유치원에 보내고 있는 도유진(35‧경기도 하남시)씨는 “경기도교육청과 하남시 등을 상대로 공공시설 임대 등 지원을 요청했지만 ‘검토해보겠다’는 말뿐이다. 공공시설 임대나 재정지원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방안은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학부모들은 정부와 유치원 기 싸움에 학부모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5살 아들이 재원 중인 유치원이 폐원을 예고한 이모(40‧서울 도봉구)씨는 “정부는 사립유치원을 옥죄기만 하고, 유치원은 죽기 살기로 버티면서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인다. 이러면 학부모들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고래싸움에 새우 등이 터져야 하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전민희·남윤서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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