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수질조작은 생활적폐”…전국 하수처리장 전수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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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의 한 공공하수처리장에서 생활하수를 처리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경기도 포천의 한 공공하수처리장에서 생활하수를 처리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환경부가 이른바 ‘비밀모드’가 설치된 수질 원격감시장치(Tele-Monitoring System, 이하 TMS)를 쓰는 전국의 하·폐수처리장을 대상으로 수질 조작 여부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섰다. 또, 해당 TMS 기기에 대해서는 승인을 취소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28일 환경부에 따르면, 비밀모드를 통해 수질을 조작할 수 있는 A사의 TMS 기기는 현재 전국의 244개 사업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전체 사업장(964개)의 25.3%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점유율이 높다. 전국 공공하수처리장과 폐수종말처리장, 일반 사업장 가운데 하루 오·폐수 처리량이 700톤이 넘으면 의무적으로 TMS를 설치해야 한다.

특히, 수도권과 강원도에만 98곳이 A사의 TMS 장비를 쓰고 있다. 여기서 방류된 물은 서울 시민의 식수원인 한강 잠실 수중보 등으로 흘러 들어간다.

환경부는 한국환경공단, 지방환경청을 통해 해당 TMS를 쓰는 하·폐수처리장으로부터 수년간의 과거 수질 데이터를 넘겨받아 분석하고 있다.

조석훈 환경부 수질관리과장은 “연말까지 전수조사를 마무리한 뒤 조작 사실이 확인되면 의정부지방검찰청에서 곧바로 수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5년 동안 수질 2만 번 조작  

경기도 포천의 한 공공하수처리장에서 방류한 물이 포천천으로 흘러가고 있다. 천권필 기자

경기도 포천의 한 공공하수처리장에서 방류한 물이 포천천으로 흘러가고 있다. 천권필 기자

환경부가 대대적으로 TMS 전수조사에 나선 건 포천의 B하수처리장에서 TMS의 비밀모드를 이용해 수년 동안 수질을 조작한 사실이 최근 밝혀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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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하수처리장의 위탁운영업체는 총질소(T-N) 항목 값이 방류수 수질 기준(20㎎/L)의 70%에 접근하면 TMS의 측정 상수인 ‘전압값’을 낮췄다. ‘영점 전압값’을 낮추면 측정값이 실제 농도보다 낮게 측정되기 때문에 방류수 오염도가 실제보다 낮은 것처럼 조작할 수 있다.

이 업체는 이런 방식으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총 2만 번 넘게 측정치를 조작했다.
또, 조작 사실을 숨기기 위해 변경 이력이 남지 않는 ‘비밀모드’를 썼다. 하수처리장을 관리·감독하는 한국환경공단과 환경부가 조작 사실을 몇 년간 밝혀내지 못한 것도 TMS에 비밀모드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조 과장은 “기온이 낮을수록 총질소 처리가 어렵기 때문에 수도권과 강원도에 있는 하수처리장에서 같은 수법으로 TMS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비밀모드 TMS, 승인 취소까지 검토 

환경부 담당자가 TMS 장비를 검사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환경부 담당자가 TMS 장비를 검사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환경부는 비밀모드로 불리는 ‘백도어(backdoor)’ 기능이 설치된 TMS 장비에 대해서도 형식 승인을 취소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승인이 취소될 경우, 새 기기는 다시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수처리장 위탁업체가 수질 TMS까지 직접 관리하는 ‘셀프 검증’을 막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지난 6월 기준 897개 사업장 중에서 하수처리장 운영과 TMS 관리를 같이 하는 곳은 401곳으로 45%에 이른다. TMS 부착 업체가 직접 시설을 운영하면서 TMS 관리까지 하는 하수처리장도 57곳이나 됐다.

이에 하·폐수처리시설 운영과 수질측정 대행을 동일한 업체가 맡지 못 하게 하는 내용의 ‘물환경보전법 개정안(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 대표발의)’이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심의 중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먹는 물까지 영향을 주는 하수처리장 방류수의 수질을 조작한 건 오래된 생활적폐 중 하나로, 제도 개선 등을 통해 이번 기회에 반드시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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