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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팔당에 오·폐수, 수질 2만번 조작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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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5일 경기도 포천시의 A 공공하수처리장. 4만여 명의 포천 시민이 쓰고 버린 하루 2만2000여t의 생활하수가 처리돼 인근 포천천으로 쉴새 없이 흘러들어갔다. 처리장에 설치된 수질 원격감시장치(Tele-Monitoring System, 이하 TMS)는 방류수 수질을 한 시간 단위로 측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 A 하수처리장을 운영하는 위탁업체는 이 TMS 장비를 5년 동안 2만 번 넘게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업체는 수질오염 물질인 총질소(T-N) 항목 수치가 방류수 수질 기준(20㎎/L)의 70% 수준으로 오르면 TMS의 ‘영점 전압값’을 낮췄다. 이렇게 하면 오염도가 실제보다 낮게 측정된다. 업체는 ‘전압값’을 바꾼 이력 정보가 남지 않도록 장치의 운영을 ‘비밀 모드’로 바꾸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환경부는 TMS에 비밀 모드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하수처리 위탁업체들 장비 조작 #수도권·충청권 상수원에 유입 #오·폐수 처리비 연 수억원 줄여 #업체 “측정 오차 … 고의 아니다”

환경부는 이번에 디지털 포렌식 수사 기법까지 동원한 끝에 측정기기에 남아 있는 ‘전압값’ 변경 이력의 자료를 확보하고 조작 사실도 밝혀냈다. 김현 환경부 환경조사담당관실 사무관은 “비밀 모드를 사용한 신종 조작 수법이어서 5년간 밝혀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A 하수처리장 측은 “측정값에 오차가 있어 영점 값을 조정한 것일 뿐 고의로 수질을 조작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오염도 높은 방류수가 한탄강을 거쳐 경기도 연천군과 파주시의 상수원인 임진강으로 흘러들었다는 것이다. 노현기 임진강 지키기 파주시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한탄강 오염이 심각하다는 주민 제보가 많았다”고 말했다. 공공 하수처리장의 TMS 수치 조작은 A 하수처리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환경부는 지난 5~9월 환경 사범 기획수사를 통해 전국 8곳의 공공 하·폐수 처리장을 적발하고 관계자 26명을 검찰에 송치했다고 15일 밝혔다.

충북 옥천군 B 하수처리장의 위탁운영업체는 빗물 맨홀을 통해 방류하는 수법으로 6년간 약 18만t의 미처리 하수를 무단 방류했다. 이 물은 중부권 식수원인 대청호로 흘러 들어갔다. 충북 음성의 C 하수처리장에서도 미처리 하수를 우회 배관을 통해 무단 방류했다. 정화되지 않은 물은 남한강을 거쳐 수도권 상수원인 팔당호까지 흘러들었다. 이 같은 수질 조작이 가능했던 것은 하수처리장 위탁업체가 수질 TMS까지 관리하는 ‘셀프 검증’ 탓이다. 환경부는 2016년부터 위탁업체도 요건만 갖추면 측정기기 관리대행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전국 하수처리장의 절반가량은 위탁업체가 직접 TMS 관리까지 하고 있다.

솜방망이 처벌도 수질 조작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폐수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1년에 수억원의 운영비가 감액되지만, 조작은 적발되더라도 벌금이 5000만원 이하에 불과하다. 조석훈 환경부 수질관리과장은 "비밀 모드가 있는 TMS 기기를 사용하는 수도권과 강원도의 67개 하·폐수 처리장에 대해 전수조사를 하고 있다”며 "법을 개정해 하수처리장 운영과 측정기기 관리를 분리하겠다”고 말했다.

포천=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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