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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마크롱이 민생고 아우성에 굴복한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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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성탁 런던특파원

김성탁 런던특파원

25%.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요즘 국정 지지율이다. 최연소 대통령으로 당선될 때만 해도 80%를 넘던 지지율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마크롱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기업의 해고 권한을 확대하고 법인세 인하를 결정한 그는 역대 정부의 개혁을 줄줄이 좌절시켜온 국영철도 노조의 파업도 돌파하며 철밥통 제도를 개편했다. ‘부자를 위한 대통령’이란 비아냥이 나왔지만 올해 신년사에서 “철저한 변혁을 계속할 것이다. 그게 바로 여러분이 나를 뽑은 이유”라고 일갈했다.

그런 마크롱이 지난 27일(현지시간) 처음으로 한발 물러섰다. 친환경 경제로 전환하자며 경유 23%, 휘발유 15% 등 유류세를 급격히 올린 데 반발한 시위가 격화한 이후다. 노란 조끼를 입고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투석전을 벌인 시위대를 향해 마크롱 정부는 당초 “극우파 네트워크가 동원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백인 중산층을 중심으로 살기가 팍팍하다고 반발하고, 프랑스 국민 80%가 지지한다는 조사가 나오자 신속히 수습책을 발표했다. 생방송으로 중계된 1시간짜리 연설에서 그는 “유류세 인상이 예상보다 큰 고통을 초래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국제유가가 오르면 시민들이 부담을 덜 느끼도록 완충하는 제도를 만들겠다”고 설명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마크롱은 원전 정책에 대해서도 실사구시적 입장을 밝혔다. 전임 올랑드 정부가 현재 75% 수준인 원전 의존율을 50%로 낮추는 시기를 2025년으로 발표했지만 이를 10년 늦추겠다고 했다. 원전을 성급히 닫으면 공해를 유발하는 화석에너지 발전이 늘어야 하고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 불안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전기를 수입할 경우 세 부담이 늘어난다며 이해를 구했다. 그러나 기후 변화 위기가 이미 온 만큼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은 옳은 방향이므로 노선을 바꾸지는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국민의 목소리를 듣겠지만, 폭력 시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도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을 추진하면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12시간을 일해도 아르바이트생의 임금을 주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편의점 가맹점주 등의 절규가 심각하다. 하지만 정부의 대처는 더디다. 한국은 과도한 석탄 화력발전소 비중 탓에 공해 물질을 쏟아내면서 지구온난화에 일조하는데도 탈원전 정책을 고집한다. ‘불도저’ 마크롱의 대처는 정책을 적기에 유연하게 펴는 게 결국 집권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길임을 보여준다.

김성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