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 자금 세탁 관여 中 기업 등 자산 300만달러 몰수 소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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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일본 정부가 북한선적 유조선이 해상에서 국적을 알 수 없는 선박과 '환적'(換積)을 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장면을 포착했다며 관련 사진을 3일 공개했다. [연합뉴스]

지난 8월 일본 정부가 북한선적 유조선이 해상에서 국적을 알 수 없는 선박과 '환적'(換積)을 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장면을 포착했다며 관련 사진을 3일 공개했다. [연합뉴스]

 미 정부가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북한 금융기관들의 달러화 세탁을 도와준 싱가포르 기업 1곳과 중국 기업 2곳의 자금을 몰수해달라고 연방법원에 소송을 냈다.

미 법무부는 27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연방 검찰 명의의 보도자료를 내고 “유류와 석탄 거래를 통해 북한의 자금 세탁을 도운 기업 세 곳의 자금 316만 7783달러(약 35억 7009만원)에 대한 몰수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위장회사와 거래하며 북한의 자금을 미국을 통해 옮겼다”고 밝혔다.

소장에 피고로 이름을 올린 회사는 홍콩에 본부를 둔 왁스 회사 ‘에이펙스 초이스’와 중국 저장성 원저우에 본부가 있는 목재 회사 ‘위안이 우드’다. 싱가포르에 본부가 있는 회사의 실명은 밝히지 않고 ‘협력 회사’라고만 했다. 법무부는 자금 몰수 소송과 함께 이 기업들의 제재 위반 행위에 대한 민사상 벌금도 청구한다고 밝혔다. 형사 기소도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면 이들 기업은 '3연속 콤보' 직격탄을 맞는 셈이다.

미 법무부가 북한 관련 제재 조치의 일환으로 몰수 절차를 진행한 경우는 과거에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올 들어 북한과 대화 국면이 조성되면서 뜸해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북ㆍ미 간 비핵화 협상이 다시 교착 국면을 맞은 가운데 세 개 기업에 대해 몰수 소송을 제기하며 보도자료까지 내고 대대적으로 알린 것은 제재망을 완화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 작심 대북 메시지인 셈이다.

특히 북한이 아닌 제3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세컨더리 제재의 성격도 있다. 제시 리우 워싱턴 DC 연방검사장은 “이번 소송은 미 안보를 해치는 기업들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가 계속해서 중대한 법적 구제조치를 취하겠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 기업들이 어디서 사업을 벌이든 상관없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을 수사한 마이클 드리옹 미 연방수사국(FBI) 특수요원도 “이번 수사를 통해 외국 기업들이 달러화를 이용해 (북한이 아닌)제3자 거래를 할 때에도 상당한 주의를 기울일 의무가 있다는 점을 상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북한과의 연결 고리가 의심되는 거래에는 아예 엮이지 말라는 사실상의 경고로 볼 수 있다.

보도자료와 소장에 따르면 피고 세 회사는 북한의 불법 자금 세탁 네트워크에서 핵심 고리 역할을 했다. 2016년 3월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270호는 모든 유엔 회원국이 북한 은행에 계좌 개설도 하지 못하도록 금융거래를 금지했다. 이에 달러 거래를 할 수 없게 된 북한 관영 은행들은 제3국 국적자가 소유한 것처럼 꾸민 위장 업체들을 내세우거나 대포 통장을 이용하는 식으로 제재를 회피해왔다. 기록만 보면 합법적인 외국 기업과의 거래이지만, 자금은 모두 북한 은행으로 흘러들어가는 식이다.

FBI 수사 결과 피고 세 기업은 ‘벨머 매니지먼트’, ‘단둥 즈청 금속회사’. ‘위총 주식회사’ 등 북한 위장회사 세 곳과 거래한 것으로 확인됐다. 셋 모두 이미 미 재무부가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업체들이다. 벨머는 러시아산 정유 제품을 북한에 공급했다. 단둥 즈청은 북한으로부터 석탄을 구매하고, 대신 북한이 핵ㆍ미사일 관련 부품을 사들이는 과정을 교묘하게 속이도록 도움을 줬다는 게 재무부의 설명이었다. 위총도 북한의 자금 세탁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제재 대상에 올랐다.

결국 자금 몰수 소송을 당한 싱가포르와 중국 기업들이 벨머, 단둥 즈청, 위총과 거래하며 입금한 자금으로 북한이 정유 제품 등을 사들였다는 게 미 법무부의 판단이다.

피고 셋 중 싱가포르 회사는 검찰 수사에 협조했으며 자금 몰수에도 이미 동의했다고 미 법무부는 소개했다. 이 회사만 실명을 밝히지 않은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싱가포르 회사는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지 않은 중국 송금인의 지시를 받아 벨머 등 북한 회사들에 돈을 보냈다고 시인했다. 이를 통해 환차익도 노렸다고 했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현지시간) 유엔과 관련 당국이 최소 선박 40척과 130개 기업에 대해 북한의 유류제품 및 석탄 밀거래에 관여한 혐의로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이들은 200건에 이르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금수품목을 불법 환적한 혐의를 받고 있다. WSJ는 또 올 들어 8월 중순까지 20여 대의 유조선이 최소 148차례에 걸쳐 북한으로 정제유를 수송했다고 보도했다. 만약 이들이 적재 용량을 꽉 채웠다면 안보리 제재 상 대북 정유제품 공급량의 상한선인 연 50만 배럴의 5배에 해당하는 양의 정제유가 전달됐을 것으로 추산된다.

 유지혜ㆍ권유진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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