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디오 산책] '오디오 폐인'의 짝사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8면

"희귀병에 전염성도 있으며, 유전도 된다. 증상은 남달리 귀가 얇아 새 오디오 소식에 안절부절 못한다. 생수(바하) .청량음료(모차르트).보약(베토벤).뷔페(오페라)를 가리지않는 잡식성 음악광이다. 기계에 빠져 조강지처와 한 순간 갈라서는 비정한 측면도 있다."

평론가 한 사람이 묘사한 오디오 환자 증후군이다. 막상 그런 자신도 환자라서 스스로를 오도팔(誤道八)로 부른다. 오디오에 길을 잘못 들어선 팔푼이,그런 뜻이라나? 오디오 매니아라는 일본식 용어 대신 요즘 쓰이는 오디오파일(audiophile)을 패러디한 언어 감각이 절묘한데, 요즘 유행어로는 오디오 폐인(廢人)쯤이 된다. 이름을 밝히면 그는 환갑진갑 넘긴 하현상씨고, 험난한 오디오 강호의 고수다.

그런 오디오쟁이들의 망가진 삶 고백은 때론 가슴 뭉클하다. 최근 한 인터넷 사이트 스토리가 그렇다. 40대 후반의 K씨가 그 경우다. 그가 월급생활을 시작한 1980년대초 직장이 하필 서울 명동. 그곳은 외제 오디오숍이 즐비했던 공간이었다. 당시 국산 콤포넌트로 음악 듣던 그에게 꿈의 기계는 JBL 에베레스트(스피커)마크레빈슨 ML2 모노블록 (파워앰프). 형편이 안되니 큼지막한 사진을 구해 붙여놓고 겨우 마음을 다스렸다. 더 목마르면 대형 스피커 JBL 하츠필드를 설치한 무교동의 음악감상실 르네상스를 찾았다. 그때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정신 못차리는 노총각 아들에게 노모가 충격요법을 썼다. 아들 없는 틈에 음반 3천장을 고물상에 넘긴 것이다. "이불 뒤집어 쓰고 일주일을 울었다"는 그는 나중 오디오숍을 차렸다. 명기(名器)란 명기들은 그때 질리도록 들었겠지만, 노모는 타계했으니 이런 불효가 없다. 문제는 꾼들. 그들은 경의부터 표한다. 다음은 리플 한토막이다. "열정이 이 정도는 돼야지요. 도통하실 겁니다".

K씨는 극단적 케이스이겠지만, 어쨌든 오디오 폐인들을 뭐라 규정할까? 과연 그들은 도 닦는 방외인(方外人)일까? 분명한 것은 그들이 몽상가라는 점이다. 철학자 마르쿠제 말대로 몰개성의 이 시대 '위대한 거부'의 삶을 사는지 모른다. 아내들로부터 때로는 "차라리 마약을 하라"는 핀잔까지 듣고사는 오도팔에게 연민을!

조우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