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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 축구 독일 월드컵 D-2 … 일어나, 박지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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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리함'을 회복하는 것이다."

가나와의 마지막 평가전을 끝낸 뒤 딕 아드보카트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은 '예리함'을 강조했다. 모든 선수에 해당되는 말이었지만 주요 타깃은 박지성(25.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었다.

공격형 미드필더 박지성은 한국의 '키 플레이어(key player)'다. 박지성이 중앙에서 활발히 움직여 줘야 공격도 살고, 수비도 안정된다. 가나전에서 박지성의 움직임은 둔했고, 한국은 경기의 주도권을 가나에 내줬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박지성의 실전 감각을 되살리기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가나전 이후 첫 훈련이자 스코틀랜드에서의 마지막 훈련이 열린 6일(한국시간) 글래스고 머리 파크. 가나전에서 90분을 모두 뛴 박지성은 이영표.이을용.박주영 등과 함께 가볍게 조깅을 했다. 60분 이상 뛴 선수들은 경기 다음날 회복을 위해 조깅과 스트레칭만 하는 것이 관례다.

나머지 선수들은 5분씩 4라운드로 7대7 미니게임을 했다. 그런데 3라운드가 끝난 뒤 갑자기 아드보카트 감독이 스트레칭을 하고 있던 박지성을 불렀다. 그러고는 노란 조끼를 입혀 게임에 투입했다. 매우 이례적인 장면이었다. 예리함이 많이 떨어진 그의 부활을 위한 특별한 조치였다.

박지성은 지난달 14일 대표팀 소집 이후 한동안 회복 훈련에만 치중한 데다 스코틀랜드에서도 훈련 도중 이영표와 부딪쳐 왼발목을 접질리는 바람에 경기 감각이 떨어져 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박지성에게 이전의 기량을 보여줄 것을 주문하고 있었다.

처음에 어리둥절하던 박지성은 감독의 의중을 간파한 듯 경기에 투입되자마자 2명을 돌파한 후 골키퍼 김용대까지 제치고 패스를 했다. 볼을 뺏긴 뒤에 곧바로 태클을 시도하자 아드보카트 감독은 "굿 태클"이라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핌 베르베크 코치는 한국말로 "압박, 압박"이라고 큰소리를 지르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한 라운드는 5분이었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은 박지성의 플레이를 좀 더 지켜보기 위해 시계를 잠시 멈춰뒀다. 베르베크 코치는 "20초만 더"라며 끝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휘슬소리가 울린 것은 4라운드가 시작된 지 6분48초가 지난 후였다.

아드보카트 감독의 의중은 다른 선수들에게도 전달됐다. 득점력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원톱 안정환은 이날 세 골을 몰아넣었고, 조재진도 날카로운 슈팅으로 골네트를 갈랐다. 양 팀 합쳐 10골이 터졌다.

코칭스태프는 가나전 패배로 가라앉은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애를 썼다. 역할을 분담해 때로 재미있게, 때로는 혹독하게 선수들을 이끌었다. 훈련이 끝난 뒤 주장 이운재는 선수들을 모아놓고 정신무장을 강조했다. 선수들은 열흘간 땀을 흘린 이곳이 '16강을 잉태한 길지(吉地)'로 기억되길 바라며 머리 파크를 떠났다.

글래스고=정영재 기자, 최원창 JE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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