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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닷 부모 20억원 사기 밝히겠다”…속속 입여는 피해 주민들

중앙일보

입력

제천 피해 주민들, 채무 변제·차용증 등 증거 확보 나서 

래퍼 마이크로닷. [연합뉴스]

래퍼 마이크로닷. [연합뉴스]

래퍼 마이크로닷(25·본명 신재호) 부모가 20년 전 충북 제천에서 수십억 원의 사기를 친 뒤 야반도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피해자들이 증거 자료를 수집하는 등 진상규명을 위한 움직임을 보인다.

경찰 "피해 금액 확인중" vs 피해자들 "20억원 이상 사기당해"

24일 제천 피해 주민들에 따르면 1997~98년까지 마이크로닷 아버지인 신모(60)씨에게 사기를 당한 사람들이 채무 변제 기록과 차용증 등 관련 서류 확보를 위해 대책위원회 구성을 논의하고 있다. 신씨는 98년 뉴질랜드로 떠나기 전 농·축협 등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으면서 지인들로부터 연대보증을 부탁했다. 신씨와 평소 친하게 지냈던 낙농업자와 고교 동창, 친척 등이 피해자다. 신씨가 잠적하자 보증을 섰던 사람들이 졸지에 빚더미를 지는 신세가 됐다. 신씨 아내는 자신이 주도한 계모임에게 “이자를 많이 쳐 줄테니 당장 돈을 쓸 계획이 없으면 곗돈을 내게 맡겨라”고 일부 계원을 회유해 돈을 들고 달아났다고 한다. 이 밖에 차용증을 쓰지 않고 빌려준 돈도 상당하다는 게 피해자들의 증언이다.

최근 신씨 부부의 신병 확보를 위해 인터폴 수배 절차를 밟고 있는 경찰은 신씨가 일단 국내에 들어와야 정확한 피해 금액을 알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제천경찰서 관계자는 “20년 전 피해자들이 제출한 진정서와 변제 내용을 살펴보고 있다. 이 금액은 언론에 보도된 20억원 이상은 아니다. 구체적인 피해 규모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 언론과 온라인커뮤니티에서 피해자들이 주장한 사기 피해액은 20억원 이상이다. 피해 주민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대위 변제를 통해 피해를 본 사람은 최소 15명, 여기에 사료대금 미납, 곗돈 피해, 차용증을 쓰지 않고 현금을 빌려준 사람을 포함하면 피해자는 30여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주민들은 당시 피해액을 약 27억원으로 정도로 보고 있다.

마이크로닷 부모가 한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한 모습. [사진 방송화면 캡처]

마이크로닷 부모가 한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한 모습. [사진 방송화면 캡처]

신씨에게 1000만원의 피해를 봤다는 A씨(61)는 “당시 수사 기관에 신고하지 않은 사람들이 꽤 많기 때문에 경찰이 파악한 피해 금액은 수억원에 불과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현재 피해를 본 사람들이 수시로 연락을 한다. 지금까지 파악한 피해자가 30여 명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 중에는 그 사건 이후 제천을 떠난 사람도 있고, 돌아가신 분들도 있다”며 “제천에 사는 피해자 중에 근거 서류(변제 내역 등)가 있는 사람에게 연락해 자료를 확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머리다쳐 중환자 됐다더니”…스트레스에 암걸린 피해자 

제천 토박이인 신씨는 송학면 무도리에서 젖소 농장을 운영했다. 축협 이사를 할 정도로 낙농 전문가로 통했다. 그러다 98년 5월 31일 농장을 처분하고 잠적했다. 당시 신씨의 소를 운반한 B씨(63)는 “밤 10시에 소를 트럭에 싣고 경기도 수원에 있는 매매상에 갔다줬다”며 “신씨는 농장에 없었고, 다른 트럭에는 트랙터와 각종 농기계, 우유 짜는 기계가 실려있었다”고 말했다.

믿었던 이웃에게 사기를 당한 사람들은 스트레스로 암에 걸리거나 신용불량자가 되는 등 후유증을 겪었다. 주민 C씨(61)는 “친형이 연대보증을 섰다가 신씨 대신 5000만원을 갚았다”며 “당시 제천 시내 단독주택 한 채 값이 3000~4000만원밖에 하지 않을 때인데 전 재산을 잃은 것과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형이 너무 억울한 나머지 간암에 걸리셨고 2006년 돌아가셨다”며 “형수는 신씨 아내에게 곗돈을 맡겼다가 찾지 못했다”고 했다.

마이크로닷은 ‘도시어부’에 출연하고 있다. [일간스포츠]

마이크로닷은 ‘도시어부’에 출연하고 있다. [일간스포츠]

신씨에게 6개월치 사료를 공급했던 사료업체 사장은 밀린 대금 1억8000만원을 받지 못했다. 그는 당시 억울함을 호소하다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신씨와 고교 동창인 D씨(60)는 1억5000만원 상당의 피해를 입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농장을 정리하고 공사판 막일을 전전하다 최근 담도암에 걸려 투병 중이다. D씨는 “신씨측에서 사과는커녕 야반도주가 아니었다는 식의 언론 인터뷰를 한 것을 듣고 더 화가 난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신씨가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사람을 통해 ‘뉴질랜드에서 사기를 당했고 신씨가 카센터에서 일하다 머리를 다쳐 중환자가 됐다’는 소문을 냈다”며 “그런데 얼마전 TV에 나온 신씨의 모습은 고생한 사람으로 보기 어려웠다. 사기를 당한 사람들은 20년 동안 죽도록 고생했는데 신씨가 잘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울화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마이크로닷은 2006년 래퍼로 데뷔한 이래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유명해졌다. 자신의 부모가 사기 논란에 휘말리자 “당시 5살이라 이런 일들을 정확히 몰랐다”고 해명했지만,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비난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제천=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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