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오 “한·미 상의 없이 단독행동 하지 않게 할 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20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한·미 워킹그룹과 관련, ’양국이 상의 없는 단독행동을 하지 않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20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한·미 워킹그룹과 관련, ’양국이 상의 없는 단독행동을 하지 않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20일 출범한 한·미 워킹그룹의 역할과 관련해 “양국이 상의 없이 단독행동을 하지 않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한국 정부에 북한 비핵화가 남북관계 진전에 뒤처지지 않도록 보장하기를 원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도 말했다.

“한국, 비핵화 안 뒤처지게 보장을” #워킹그룹 회의 전 이례적 압박 #남북관계 과속에 불만 표출한 건 #9월 남북 군사합의 때 이후 처음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오후(현지시간)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 한국 대표단이 스티브 비건 대북특별대표와 워킹그룹 1차 회의를 하기 위해 국무부 청사에 도착한 직후 연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이 ‘단독행동’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남북관계 진전과 북한 비핵화가 함께 가야 한다는 입장을 직설적으로 밝힌 것은 이례적이다. 남북관계 진전이 북한 비핵화보다 앞서 가선 곤란하다는 미국 정부 내의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북 제재·압박에서 한국이 이탈하지 말라는 요구를 이번엔 수위를 더 높여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관련기사

폼페이오 장관은 남북관계와 비핵화의 조율을 위해 한국 정부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에 대해 “나는 이것이 어떻게 진행돼야 하는지 한·미 사이의 완전한 합의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제 그(조율) 과정을 공식화하는 워킹그룹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워킹그룹은 우리가 서로 딴소리를 내지 않으며, 상대가 모르거나 의견과 생각을 제공할 기회를 갖지 못한 상태에선 단독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신할 수 있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게 비건 특별대표가 이끄는 워킹그룹의 목적”이라고 다시 강조했다.

이는 그간 한·미가 서로 딴소리를 했고 상대가 모르게, 조율 없이 일방적 행동을 했다고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말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워킹그룹을 통해 남북 간 사업을 한·미가 사전에 조율해 단독행동을 하지 말자는 취지다.

AP통신은 “폼페이오가 남북 유대관계 확대에 경고 목소리를 냈다”며 “한국은 지난달 대북 독자제재를 일부 해제하려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승인 없이 아무것도 못 한다’고 쏘아붙이자 물러선 적이 있다”고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또 비핵화와 남북관계는 2인용 자전거라는 비유도 했다. 남북관계는 비핵화와 같은 속도로 굴러가야 한다는 재확인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우리는 그것(비핵화와 남북관계)이 함께 나아가는 2인용 자전거며, 중요한 병행 과정으로 생각한다”며 “워킹그룹은 그 방식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고 밝혔다. 워킹그룹이 사실상 남북관계가 비핵화를 앞서갈 수 없도록 붙잡는 장치임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그간 공개된 자리에서 이날처럼 직설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피했다. 하지만 폼페이오 장관이 남북관계 추진 속도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남북군사합의서를 통해 알려졌다. 폼페이오 장관은 평양 남북 정상회담 하루 전인 9월 17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남북군사합의서에 대해 사전 협의가 없었다”고 항의했다. 워싱턴 싱크탱크 전문가는 이날 기자와 만나 “미국 국무부는 북한이 협상을 기피하며 실질적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북한 입장에 동조하는 듯한 언급을 해 한·미 비핵화 공조에 균열이 갔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도훈 본부장은 워킹그룹 1차 회의를 마친 뒤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비핵화, 평화체제, 남북관계 등 남북 및 북핵 문제에 대한 제반 사항을 충분히 논의했으며 회의를 정례화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미국과 협의하겠다는 약속이다. 한편 북·미 고위급회담 일정에 대해 정부 고위 관계자는 “아직 확정이 안 됐지만, 미국은 내년 초 2차 정상회담 준비를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