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선수, 국기놓쳐 우승놓쳐 비난까지 받았는데…숨겨진 반전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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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선 직전에서 국기를 건네받은 중국 마라톤 선수 [홍콩 명보 캡처=연합뉴스]

결승선 직전에서 국기를 건네받은 중국 마라톤 선수 [홍콩 명보 캡처=연합뉴스]

중국의 한 마라톤 대회에서 자원봉사자가 중국 선수에게 국기를 억지로 넘겨주려다가 우승을 놓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 네티즌은 이 선수가 국기를 제대로 들지 않았다며 비난을 쏟아냈지만, 이 모든 정황이 대회 주최 측이 계획했던 일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20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지난 18일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허인리(何引麗) 선수는 결승선을 500m 앞두고 에티오피아 선수와 접전을 벌였다.

선두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던 허인리에게 갑자기 한 자원봉사자가 뛰어들었다.

이 봉사자는 허인리에게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五星紅旗)를 건네주려고 했다. 에티오피아 선수와 접전을 벌이던 시점에서 국기를 받아들기에 무리가 있었던 허인리는 이를 거부했다.

하지만 곧바로 또 다른 자원봉사자가 트랙 안으로 뛰어들었다. 이 봉사자 역시 국기를 건네주려고 했고, 허인리는 얼떨결에 국기를 받아들었다. 하지만 큰 국기를 들고 막판 속도를 높이기는 무리였다.

결국 허인리는 수초 후 국기를 떨어뜨렸고, 에티오피아 선수는 이 틈을 타 허인리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줄곧 선두를 유지하던 허인리는 5초 차로 우승을 놓치고 말았다.

자원봉사자들의 황당한 행동으로 인해 허인리는 우승을 놓쳤지만, 중국 네티즌은 허인리가 국기를 소중히 다루지 않았다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중국 네티즌은 "국기를 제멋대로 땅바닥에 던진 것은 국기를 존중하지 않은 것"이라며 "대회 성적이 국기보다 중요하냐"고 질타했다.

이에 허인리는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 "국기를 던진 것은 아니며, 국기가 비에 흠뻑 젖은 데다 팔이 뻣뻣해 국기를 떨어뜨린 것뿐"이라며 이를 사과한다는 글을 올렸다.

반전은 여기서 시작됐다. 논란이 확산하자 일부에서는 결승선 직전 1초가 아까운 선수에게 국기를 건넨 자원봉사자의 행동이 적절치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비난 여론이 이어지자 결국 대회 관계자는 자원봉사자의 돌출 행동이 당초 대회 주최 측에 의해 계획된 행동이었다고 밝혔다.

한 대회 관계자는 "1위부터 3위를 기록한 중국인 주자는 반드시 중국 국기를 걸치고 결승선에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 방침이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9월 베이징 마라톤 대회에서 4위로 들어와 중국인으로서는 최고 성적을 올린 리쯔청도 결승선에 들어오기 전 자원봉사자에게서 오성홍기를 건네받았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주최 측이 선수에게 무리한 요구를 했다고 비난했다. 대회를 중계한 관영 중국중앙(CC)TV 해설자는 "선수가 이를 악물고 뛰는 이 시점에서 사소한 방해도 그녀의 성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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