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테르테의 친중탈미···미군 떠난 기지에 中 공업단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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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20일 필리핀 수도 마닐라 국제공항에 도착해 중국측 환영 인사의 영접을 받고 있다. [AP=연합]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20일 필리핀 수도 마닐라 국제공항에 도착해 중국측 환영 인사의 영접을 받고 있다. [AP=연합]

중국 대형 국유기업이 미군이 철수한 필리핀 수도 마닐라 인근의 클라크 전 공군기지에 대규모 공업단지를 조성한다.

클라크 공군기지 500만㎡에 2조2500억원 투자 #중국 IT·제조기업 위한 경제특구 개발 MOU 예정 #13년 만의 시진핑 국빈방문 맞춰 친중탈미 외교

20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1박 2일 필리핀 국빈 방문을 계기로 중국의 댐 건설 전문 거저우바(葛洲壩) 그룹이 20억 달러(2조2500여 억원)를 클라크 공업단지 조성에 투자할 예정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 중문판이 19일 보도했다. FT는 클라크 프로젝트가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친중탈미 정책을 상징하는 프로젝트라고 지적했다.

마닐라에서 북서부로 64㎞ 떨어진 클라크 일대를 대규모 경제특구 및 자유항구로 탈바꿈시키는 프로젝트는 두테르테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 중인 총액 1800억 달러 규모의 ‘빌드빌드빌드’ 인프라 건설 계획의 핵심이다. 1991년 미군이 철수한 공군기지를 중국 자본이 재개발하는 프로젝트로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중의 역학 구도를 흔들고 있다.

비센시오디존 필리핀 기지전환청장은 “이번 주 중국 거저우바 그룹과 500만㎡ 부지를 중국의 과학기술(IT) 및 제조업 기업을 위해 개발하는 프로젝트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디존 청장은 “클라크는 중국의 필리핀 최대 투자 프로젝트 중 하나”라며 “기업들이 입주하면 수천 단위의 취업을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거저우바 그룹의 뤼쩌샹(呂澤翔) 총경리도 중국 인터넷 매체 관찰자망에 “필리핀의 공업단지·도로·철로 등 경제 건설과 투자에 참여해 필리핀 경제발전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겠다”고 밝혔다. 클라크 기지 재개발은 2005년 후진타오(胡錦濤) 이후 13년 만에 이뤄진 중국 국가 주석의 필리핀 국빈 방문에 맞춰 성사됐다.

이동통신 분야의 협력도 체결됐다. 중국 국유 이동통신사 차이나텔레콤이 필리핀 우덴나 코퍼레이션과 구성한 컨소시엄이 19일 필리핀 제3 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됐다.

이번 프로젝트 성사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친중탈미 정책의 소산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2016년 취임 직후 국제 상설중재재판소의 남중국해 영유권 판결 승소에도 불구하고 중국 일변도 외교를 펼쳐왔다. 취임 첫해 10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해 “미국에 작별을 말할 시간”이라며 150억 달러 규모의 철도·항구 건설 협의를 이뤄냈다. 올 상반기 중국의 필리핀 투자 총액은 1억8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하지만 필리핀 내부의 우려도 나온다. 제이 바통바칼 필리핀대 법학과 교수는 “이들 협약이 중국이 필리핀에 거대한 경제·정치 영향력을 갖게 할 것”이라며 “향후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독자적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 주석은 미소 외교로 필리핀 민심 공략에 나섰다. 전날 필리핀 주요 신문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중국은 필리핀과 일대일로(육·해상 신실크로드) 틀 안에서 전략적 협력을 통해, 경제무역과 기초설비 건설·농업·관광 등 각 영역에서 상호협력을 심화하며, 필리핀을 도와 더 많은 민생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다.

두테르테는 가족까지 동원해 중국의 인민폐 외교에 화답했다. 중국 관영 신화사 등 공동 인터뷰에서 두테르테 대통령은 “내 외조부가 중국에서 온 걸 아느냐”며 “중국 정부가 허락한다면 중국에 집을 짓고 은퇴 후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작은딸 키티가 제2 외국어로 중국어를 공부한다며 시 주석을 위해 중국 노래를 부르도록 부탁했다고 밝혔다. 지난 2017년 4월 시 주석의 미국 마라라고 방문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손녀 아라벨라 쿠슈너가 중국 민요 모리화를 부른 것과 같은 환영 방식이다.

미 해군 항모 로널드 레이건 함과 존 스테니스 함 항모 강습단이 16일 필리핀 해역에서 각각 공중·해상·대잠수함 실전 군사 연습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미해군연구소(USNI)]

미 해군 항모 로널드 레이건 함과 존 스테니스 함 항모 강습단이 16일 필리핀 해역에서 각각 공중·해상·대잠수함 실전 군사 연습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미해군연구소(USNI)]

한편 미 해군 항모 로널드 레이건 함과존 스테니스 함 항모 강습단이 16일 필리핀 해역에서 각각 공중·해상·대잠수함 실전 군사 연습을 진행했다고 미 해군연구소(USNI)가 19일 보도했다. 미 항모 전단의 훈련은 시진핑 주석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브루나이·필리핀 순방과 겹치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ij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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