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 곤 회장 체포, 일본인 임원과의 암투 때문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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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보수를 5년간 모두 50억엔(약 500억원) 축소해 신고한 혐의 등으로 도쿄지검 특수부에 체포된 닛산(日産)자동차 카를로스 곤(64)회장 사건의 여파가 20일 도쿄주식시장으로 번졌다.

도쿄시장서 닛산자동차 주가 한때 6% 빠져 #내부 제보로 회사가 비리 조사,검찰에도 협조 #요미우리 "곤 회장과 일본인 임원간 갈등 심해" #일본 언론들은 "변절한 카리스마"라고 곤 비난 #"곤 없는데 닛산+르노+미쓰비시 제휴?"우려도

지난해 10월 파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카를로스 곤 닛산 회장 겸 르노 회장. [AP=연합뉴스]

지난해 10월 파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카를로스 곤 닛산 회장 겸 르노 회장. [AP=연합뉴스]

거래시작때부터 매도 주문이 쇄도해 닛산자동차 주가가 전날 종가에 비해 한때 6%넘게 빠진 940엔(9405원)을 기록했다. 닛산자동차가 34%를 출자하고 있는 미쓰비시(三菱)자동차의 주가도 한때 8% 가까이 빠졌다.

NHK는 "카리스마가 있던 곤 회장이 체포됨에 따라 닛산과 미쓰비시자동차의 중장기적인 성장 전망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는 관계자의 발언을 전했다. 전날 뉴욕증권거래소에서도 닛산자동차의 주가는 전날보다 8% 이상 하락했다. 같은날 파리 주식시장에선 닛산과 제휴관계인 르노의 주가가 한때 13%까지 급락했다.

곤 회장의 체포 이유는 유가증권보고서의 허위기재다. 2011~2015년 실제로는 99억9800만엔(약 1000억원)을 보수로 받았지만 49억8700만엔(약 500억원)만 기재했다는 것이다.

닛산자동차는 회사 내부 제보를 토대로 사내 조사를 벌여왔고, 검찰 수사에도 적극 협조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언론들은 "수사에 협력하는 대신 형사처분을 감면받는 사법거래제도에 따라 닛산의 사원이 곤 회장 관련 수사에 협력했다"고 전했다.

20일 일본 도쿄에서 시민들이 주가현황판에 표시된 닛산자동차 주가를 확인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20일 일본 도쿄에서 시민들이 주가현황판에 표시된 닛산자동차 주가를 확인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닛산자동차측은 곤 회장의 혐의가 단순한 보수 허위 기재뿐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가 체포된 19일 밤 기자회견을 연 사이카와 히로토(西川廣人) 대표이사 사장은 "내부조사 결과 (보수 허위기재 외에도)지출목적을 속여 사적으로 투자자금을 지출했고, 개인적 목적으로 회사의 경비 지출하는 등 3가지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회사 스스로가 곤 회장의 치부를 드러낸 셈인데 이를 두고는 "곤 회장과 회사 내부 일본인 임원들간의 갈등이 이번 사태를 부른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요미우리 신문은 “곤 회장이 2015년 (제휴사인 르노의 주식 15.01%를 보유한)프랑스 정부의 뜻을 수용해 르노와 닛산의 완전한 경영 통합을 추진한 것에 대해 (일본인 임원인)사이카와 사장측이 강하게 경계했다”,“2017년 발각된 자동차 검사 부정 파문 때도 곤 회장 자신은 책임을 지지 않고 일본인 임원들에게 떠넘기려했다"는 내부 실상을 전했다. 이 때문에 곤 회장이 르노 등에서 데려온 외국인 임원과 일본인 임원들 사이에 날카로운 신경전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곤 회장과 대척점에 선 것으로 알려진 사이카와 사장은 19일 밤 회견에서 “절대로 용인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라며 곤 회장을 22일 열리는 이사회에서 해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닛산자동차의 사이카와 히로토 사장이 19일 밤 요코하마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곤 회장과 대립해온 것으로 알려진 그는 곤 회장을 22일 이사회에서 해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AP=연합뉴스]

닛산자동차의 사이카와 히로토 사장이 19일 밤 요코하마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곤 회장과 대립해온 것으로 알려진 그는 곤 회장을 22일 이사회에서 해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AP=연합뉴스]

일본 언론들도 일제히 곤 회장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쏟아냈다. “변절한 카리스마”(니혼게이자이),“재건 카리스마 실추, 권한집중으로 회사내 불협화음”(요미우리 신문)이란 제목들이다. 곤 회장이 사원들에겐 엄격하고 철저한 비용절감을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에겐 관대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니혼게이자이 신문과 NHK 등은 “곤 회장이 자회사로 하여금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 레바논의 베이루트, 프랑스 파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 4곳에 고급주택을 구입케 하고 이를 자신이 이용했다"고 보도했다. 또 “가족 여행 비용을 회사에서 댔다”거나 “당초 임원 몫 보수로 책정된 비용 중 집행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는데 곤 회장이 이를 자신에 대한 보수로 전용했을 수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한편 르노의 최대주주인 프랑스 정부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19일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언급하기 이르지만 프랑스 정부는 르노의 대주주로서 그룹의 안정과 르노와 닛산의 동맹에 대해 매우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는 ‘곤 회장을 체포한 일본 정부에 경고를 보낸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여파는 닛산과 르노, 미쓰비시의 3자간 제휴로 튈 전망이다. 20일 사이카와 회장은 “3자간 제휴는 안정적으로 이어나가겠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일본 언론에선 “닛산과 미쓰비시에선 회장, 르노에서 회장겸 최고경영자를 맡고 있던 곤 회장이 체포됐고, 곧 닛산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마당에 3사 제휴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곤 회장은 브라질에서 태어나 레바논에서 컸다. 1978년 프랑스의 타이어 기업 미쉐린에 입사했다가 96년 르노 자동차로 옮겼다. 99년 경영악화에 시달리던 닛산에 파견돼 2000년 사장, 2001년 최고경영자가 됐다. 공장폐쇄와 인원감축 등을 주도해 닛산의 경영을 V자로 회복시켰다. 2005년엔 르노자동차의 최고경영자로 취임했고 2016년엔 미쓰비시자동차와의 제휴를 주도하면서 미쓰비시의 회장으로도 취임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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