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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 발레로 다시 태어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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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보리스 에이프만발레단의 '돈 주앙과 몰리에르'.

우리의 고전 '춘향'이 세계 최고의 발레 안무가로 꼽히는 러시아의 보리스 에이프만(60.사진)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다. 국립발레단(단장 박인자) 측은 "내년 10월께 올릴 창작 발레 '춘향'의 안무를 에이프만이 맡기로 합의했다"고 4일 밝혔다.

지금까지 '심청' 등 우리 고전이 외국 안무가에 의해 재구성된 무대는 있었으나 에이프만 같은 거장이 직접 안무를 짜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무용 이론가 장인주씨는 "축구로 따지면 히딩크를 영입한 셈"이라며 "한국 발레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에이프만은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지난해부터 박 단장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다. "한국 무용을 잘 몰랐기 때문에 처음에 조금 꺼렸다"는 그는 "박 단장이 '당신만의 스타일로 만들어라. 한국적이라는 데 얽매일 필요 없다. 우린 세계 무대를 향한다'라고 말해 용기를 얻고 확신을 가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 초반 자신의 '레퀴엠'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국립발레단과의 인연을 들려준 에이프만은 "'춘향'보다는 '한국'에 끌렸다는 것이 더 맞을지 모른다"며 "한국의 이야기를 유럽 사람의 눈으로 재해석해 보여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15년 전 처음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한국 무용수의 수준은 세계 수준과 조금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 유럽에서 열리는 각종 콩쿠르에 참가하는 한국인들을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게다가 올 '브누아 드 라 당스'의 여성 무용수상을 받은 것도 한국인 아닌가.(에이프만 역시 올해 '브누아 드 라 당스'의 안무상을 받았다)" 그는 "한국인은 마음이 따뜻하고 뜨겁다. 한국인은 무용수의 움직임을 머리가 아닌 심장으로 그대로 빨아들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내년 상반기엔 유니버설 발레단도 국내 창작자(배정혜 연출, 유병헌 안무)에 의해 춘향을 무대에 올린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발레단이 '국내파'와 '해외파'로 나뉘어 자존심을 건 맞대결을 벌이게 됐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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