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에이프만발레단의 '돈 주앙과 몰리에르'.
지금까지 '심청' 등 우리 고전이 외국 안무가에 의해 재구성된 무대는 있었으나 에이프만 같은 거장이 직접 안무를 짜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무용 이론가 장인주씨는 "축구로 따지면 히딩크를 영입한 셈"이라며 "한국 발레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에이프만은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지난해부터 박 단장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다. "한국 무용을 잘 몰랐기 때문에 처음에 조금 꺼렸다"는 그는 "박 단장이 '당신만의 스타일로 만들어라. 한국적이라는 데 얽매일 필요 없다. 우린 세계 무대를 향한다'라고 말해 용기를 얻고 확신을 가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 초반 자신의 '레퀴엠'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국립발레단과의 인연을 들려준 에이프만은 "'춘향'보다는 '한국'에 끌렸다는 것이 더 맞을지 모른다"며 "한국의 이야기를 유럽 사람의 눈으로 재해석해 보여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15년 전 처음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한국 무용수의 수준은 세계 수준과 조금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 유럽에서 열리는 각종 콩쿠르에 참가하는 한국인들을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게다가 올 '브누아 드 라 당스'의 여성 무용수상을 받은 것도 한국인 아닌가.(에이프만 역시 올해 '브누아 드 라 당스'의 안무상을 받았다)" 그는 "한국인은 마음이 따뜻하고 뜨겁다. 한국인은 무용수의 움직임을 머리가 아닌 심장으로 그대로 빨아들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내년 상반기엔 유니버설 발레단도 국내 창작자(배정혜 연출, 유병헌 안무)에 의해 춘향을 무대에 올린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발레단이 '국내파'와 '해외파'로 나뉘어 자존심을 건 맞대결을 벌이게 됐다.
최민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