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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누구를 위한 ‘혐오사회’인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10호 34면

이른바 ‘이수역 폭행 사건’으로 촉발된 ‘여혐· 남혐’ 논란이 극단적인 성 대결로 치닫고 있다. 사실관계가 명확히 밝혀지기도 전에 일부 정치인과 연예인까지 가세해 상대방 성에 대한 무분별한 공격을 남발하며 남녀 간 감정싸움을 부추기고 있어 심히 우려스럽다.

이 사건은 당초 여혐(여성 혐오) 폭행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라고 주장한 여성이 인터넷 게시판에 ‘메갈X 등 여혐 용어를 쏟아내는 남성들로부터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해 크게 다쳤는데도 오히려 피의자 신분이 됐다’며 도움을 청하는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남성 가해자의 신상 공개와 처벌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이 하룻밤 새 30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여성들의 공분을 샀다.

그러나 경찰의 1차 조사 결과를 보면 이 사건의 본질은 여혐 폭행이라기보다는 매일 밤 숱하게 벌어지는 술자리 시비일 뿐이다. 양측 주장이 엇갈리는 만큼 폭행을 둘러싼 잘잘못은 추후 엄정한 경찰 조사와 법 집행으로 해결하면 될 일이다. 다툼의 당사자가 단지 각각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소모적인 성 대결을 벌일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비롯해 적잖은 유명인사들이 “(남성의 여성에 대한) 증오범죄로 봐야 한다”는 식으로 성 대결을 부추기고 있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남녀가 얽힌 사건이 발생하기만 하면 서로 상대 성을 향한 날 선 혐오 언어를 쏟아내는 게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적으로 돌리며 ‘메갈X’이나 ‘한남충’ 같은 혐오와 조롱의 언어로 상대를 자극하는 건 남녀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갈등과 분열만 더욱 확산할 뿐이다. 실제로 그 결과 지금은 남녀 모두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어 결혼은커녕 연애조차 두려워할 지경에 이르게 됐다. 이렇게 점점 극단으로 치닫다간 남녀가 아예 따로 분리해서 살자는 주장마저 나올지 모를 판이다. 남자든 여자든 이런 결말을 원하는 건 아닐 것이다. 갈등과 분열 대신 연대와 관용의 정신을 되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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