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소는 무용의 장물될 것”…70년 전에도 특별재판부 위헌 논란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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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8월21일 종로구 중앙청사(현 국회의사당).

토요일 아침부터 국회의원들이 모여들었다. 상정된 안건은 ‘반민족행위 처벌법안’.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제헌헌법 제101조를 근거로 특별재판부 설치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제헌국회 회의록’에는 당시 분위기가 잘 담겨있다.

1948년 5월 31일 서울 세종로 중앙청 회의실에서 이승만 당시 의장(가운데)이 제헌국회 개원사를 하고 있다. 총 198명의 제헌 국회의원은 한 달 반 뒤인 7월 17일 제헌 헌법을 공포했다. [중앙포토]

1948년 5월 31일 서울 세종로 중앙청 회의실에서 이승만 당시 의장(가운데)이 제헌국회 개원사를 하고 있다. 총 198명의 제헌 국회의원은 한 달 반 뒤인 7월 17일 제헌 헌법을 공포했다. [중앙포토]

▶서우석(한국민주당) 의원= “특별법이라고 해서 특별재판소를 설치한다면, 무엇이든지 특별법으로 특별재판소를 설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사법재판소라는 것은 무용의 장물이 될 뿐이라고 생각하는 바이올시다.”

▶김웅진(무소속) 의원=“우리 대한민국이 몇천만년이 되어도 이러한 법령은 안 생길 것입니다. 또 생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고로 특별재판소를 두는 것은 이번 한 번이고 또 특별법을 제정한다는 것도 헌법에서 이것 하나이겠습니다.”

당시 상황은 이랬다. 일제 강점기 시대 일제에 협조하는 등 반민족적인 행위를 한 사람들을 조사하기 위해 제헌헌법(101조)에 특별법을 만들도록 명시했다.

논란이 됐던 지점은 구체적인 처벌 방법을 기존 사법부(사법재판소)에 맡길 것인지 아님 별도의 재판부(특별재판소)를 따로 둘 것인가였다. 헌법에는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고만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1948년 7월 17일 이승만 초대 국회의장의 제헌국회가 제정한 헌법에 서명하고 있다. [중앙포토]

1948년 7월 17일 이승만 초대 국회의장의 제헌국회가 제정한 헌법에 서명하고 있다. [중앙포토]

전례가 없었기에 당시 제헌국회에선 ‘삼권분립’ 위반 등 여러 논란이 일었다. “신정부에서 별도 재판소를 구성하면 거기에 따라서 판결을 할 것” 등의 우려가 나왔다.

물론 찬성한 의원들도 많았다. 이들은 “국권강탈에 적극 협력한 자는 특별히 예외를 두고 강력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는 게 주된 근거였다.

결국 48년 9월 특별재판소를 국회에 설치하는 것 등을 담은 반민족행위 처벌법이 통과됐다. 49년 3월 첫 재판을 시작해 같은 해 8월 종료했다. 초대 대법원장인 김병로가 재판을 총괄했다.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8일 국회에서 열린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위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8일 국회에서 열린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위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는 지금 국회에서 논의하는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한 특별재판부 설치 공방과도 비슷하다.

이와 관련해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8일 국회 사법개혁특위에서 “특별재판부 도입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특별재판부 찬성 입장을 밝혀 사법부와 행정부 간 의견이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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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도 여야간 입장이 갈린다.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은 “당시 반민특위를 통한 특별재판소 설치는 제헌 헌법을 근거로 만들어졌다”며 “당시 헌법에까지 근거가 있었음에도 특별재판소 설치에 이토록 위헌 논란이 일었는데, 지금은 헌법에도 없는 ‘사법농단 특별재판소’를 설치하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8일 국회에서 열린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위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8일 국회에서 열린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위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특별재판부 설치법을 대표발의한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9일 회의에서 “초대 헌법에는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법을 제정할 수 있다고만 돼 있지 특별재판부를 만들어도 된다는 규정은 없다”며 “그럼에도 당시에는 법관이 아닌 일반인, 국회의원까지 참여하는 수준의 특별재판부를 만들었다”고 반박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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