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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공백 우리금융지주, 갈길 바쁜 손태승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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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손태승

손태승

소방수에서 ‘금융 명가(名家)’ 재건을 이끌 수장으로의 변신에 소요된 시간은 1년에 불과했다. 손태승(59) 우리은행장이 내년 초 출범할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8일 내정됐다. 우리은행은 이날 임시이사회를 열고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의 겸직을 골자로 하는 지배구조 방안을 결의했다. 손 행장은 다음 달 28일로 예정된 임시 주주총회에서 우리금융 회장에 공식 선임된다.

2020년 3월까지 회장·행장 겸직 #자회사 이전 순조롭게 마치고 #경쟁 지주사 맞먹게 몸집 키워야 #중장기적으로 보험·증권 M&A도

이날 이사회에서는 지주사 설립 초기 안정화를 위해  2020년 3월까지 회장-행장 겸직 체제로 운용한 뒤 이후 분리하기로 했다. 2020년 3월은 2019년 사업연도에 대한 정기 주주총회 종결 시한이다. 지주사 이사회는 은행의 현 과점주주가 추천한 사외이사 중심으로 구성하기로 했다. 우리금융지주에서 우리은행이 차지하는 비중(99%)을 고려한 현실적 선택이다.

손 행장의 지난 1년은 짧으면서도 길었다. 채용 비리 사태로 인해 지난해 11월 이광구 전 행장이 물러나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소방수’로 긴급 투입돼 흔들리던 우리은행의 키를 잡았다.

지난해 12월 은행장에 취임한 뒤 그가 우선적으로 역점을 둔 것은 공격적인 영업 DNA의 구축이었다. 판교에 혁신기업 투자 발굴 업무만을 담당하는 지점을 만들었고, 국내 은행권 최초로 투자 대상 벤처기업을 공모해 12개 업체에 110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혁신기업 발굴과 이를 통한 수익 창출을 새로운 돌파구로 인식하고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신용대출도 어려웠을 스타트업 등에 아낌없이 거액을 투자했다.

글로벌 사업본부장과 글로벌 부문장을 거친 경험을 십분 발휘해 적극적인 해외 네트워크 구축에 나서기도 했다. 덕분에 글로벌 네트워크는 26개국 420개로 늘어났다. 최근에는 해외 영업 확대와 강화를 위해 아시아 지역 여신심사를 전담하는 아시아심사센터를 싱가포르에 설치했다.

소통을 중시하고 조직 안정화를 위한 내부 결속을 다지는데도 신경을 썼다. “서비스를 파는 곳인 은행에서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 3월부터 총 4500㎞를 이동하면서 46개 모든 영업본부를 직접 방문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실적도 좋았다. 올 3분기까지의 우리은행 누적 당기순이익은 1조9034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순이익(1조5121억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 늘어난 사상 최대 실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제부터가 ‘진검승부’라고 보고 있다. 은행장으로서의 성적표는 나쁘지 않았지만, 지주사라는 거함을 이끄는 건 또 다른 일이라서다. 특히 정부의 그늘에 있었던 과거의 우리금융과 달리 민영 금융지주사로 재출발하게 됐다는 점도 손 행장으로서는 부담이 될 수 있다. 더는 결과를 논하면서 정부 핑계를 대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역시 70여명 수준으로 내년 초 출범하는 지주사의 시장 안착이다. 지주사 전환 시 은행의 자기자본비율(BIS)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금융당국을 설득해야 하고, 은행 자회사인 우리카드와 우리종합금융을 지주사 자회사로 순조롭게 이전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다른 4대 금융지주사와 맞설 수 있는 경쟁력 제고의 토대도 확보해야 한다. 시장에서는 2014년 옛 우리금융지주 해체 후 4년의 공백을 만회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며 탄탄하게 입지를 차지한 4대 금융지주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손 행장과 우리은행 측은 단기적으로 부동산신탁회사나 자산운용사를 중심으로 지주사의 몸집을 키우는 한편 보험사나 증권사 등의 인수합병(M&A)은 시간을 갖고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원재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당장 M&A에 나설 만큼 매력적인 매물도 없는 데다 일시적 자기자본비율 하락에 따른 출자 여력 제한 가능성도 있다. 우리금융이 경쟁력을 확보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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