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제재에도 국제유가 내리막…러시아 ‘숨은 승자’ 될까

중앙일보

입력

국제 유가가 8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사흘 전 미국의 이란산 원유 수출 제재로 수급 불안정이 예상됐지만 반대로 원유 가격이 더 내려가고 있다.

8거래일 연속 하락…4년 4개월 만 #미국 원유재고 ↑, EU도 미리 대비 #"러시아산이 이란산 대체" #향후 가격 추이는 지켜봐야 #

 7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2월물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전날보다 배럴당 0.54달러(0.9%) 하락한 61.67달러로 마감했다. 지난 3월 이후 8개월 만의 최저치다. 같은날 런던ICE 선물거래소의 북해산 브렌트유(Brent)도 0.06달러(0.08%) 떨어진 72.07달러를 기록했다.

미국 정부가 5일(이하 현지시간) 대이란 제재 조치를 복원했다. [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5일(이하 현지시간) 대이란 제재 조치를 복원했다. [연합뉴스]

 앞서 미국은 지난 5일 자정(현지시각)을 기점으로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를 포함한 대이란 경제 제재를 전면 복원했다. 하지만 이후 3일 연속 국제 유가 하락세가 오히려 가중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WTI 가격이 2014년 7월 이후 가장 장기간에 걸쳐 연속 하락했다”고 전했다.

 시장 안정을 주도하는 건 원유 재고를 예상보다 많이 쌓아 둔 미국 정부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지난주 미국 원유재고가 약 578만 배럴 증가해 6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WSJ에 따르면 이는 전문가들의 예상치를 뛰어넘는 수치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예상되는 석유 수요가 낮아지는데 재고가 증가하면서 유가가 하향 곡선을 그렸다는 분석이다.

 유럽연합(EU) 등 미국을 제외한 주요국들이 이번 이란 제재를 충분히 미리 예측해 대비했다는 점도 유가 안정을 이끄는 요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란 원유 제재로 인한 국제 원유 공급량 축소를 우려한 시장 참여자들이 필요한 원유를 제재 전 미리 사들였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지난달 5년 만에 최고 가격(배럴당 86달러)까지 치솟았던 브렌트유가 이후 15% 가까이 하락했다”는 설명이다.

최근 3개월간 WTI 가격 추이

최근 3개월간 WTI 가격 추이

 여기에 더해 이란을 제외한 다른 산유국들이 생산을 늘리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세계 3대 원유 생산국인 미국·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의 원유 공급량 합계(3330만 배럴)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세 나라는 전세계 원유 공급량의 3분의 1 가량을 담당한다.

 벌써 일각에서는 이번 이란 석유 수출 금지의 최대 수혜를 러시아가 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EU를 제외한 중국,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이란산 원유의 대체제로 러시아산을 찾고 있어서다. WSJ는 “러시아 원유 기업들이 발빠르게 진입해 이란으로부터 고객을 빼앗아가고 있다”면서 “두 나라에서 생산하는 원유의 품질이 비슷해 (이란산을 수입하던) 정유사들이 (러시아산을) 쉽게 정유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지난달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 에너지 포럼 행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 에너지 포럼 행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미국발 이란 제재는 한국을 포함한 8개 국가에 한해 예외를 인정했다. 때문에 급격한 유가 상승을 피한 측면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7일(현지시각) 미국 중간선거 결과 발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150달러까지 상승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서 8개국 예외를 인정한 배경을 설명했다.

 물론 지금의 유가 하락세가 지속된다는 보장은 없어 보인다. FT는 지난 4월 하루 280만 배럴에 달했던 이란의 원유 생산량이 향후 6개월 안에 절반 이하(130만 배럴)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이 이란에 더 강도 높은 추가 제재를 행사할 가능성도 있다.

 월가의 에너지 선물 전문가인 스튜어트 글릭만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가 이달 말쯤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사우디아라비아가 다시 산유량을 줄이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유가에 영향을 미칠 변수가 많다는 의미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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