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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까지 들어와"vs"생존권 사수"…단전·단수 조치 들어간 노량진 시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5일 오전 신 노량진수산시장 수협 사무실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구시장 상인들과 수협 직원들 간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조한대 기자

5일 오전 신 노량진수산시장 수협 사무실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구시장 상인들과 수협 직원들 간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조한대 기자

“이거 안 놔!” “오늘 다 같이 죽는겨!”

수협, 5일 오전 9시 구시장 단전·단수 #구상인들 신시장 진입 시도에 몸싸움

5일 오전 10시35분 신(新) 노량진수산시장 1층 출입문. 붉은 조끼를 입은 구 시장 상인들이 들어가려 하자 수협(노량진수산주식회사) 측 직원들이 몸으로 막아섰다. 욕설과 고성이 오갔다.

상인들은 2층 엘리베이터로 움직였다. 여기서도 상인과 직원들간 실랑이가 벌어졌다. 옷을 움켜쥔 상인과 엘리베이터를 막는 직원 사이에서 고성이 오갔다. 욕설도 들려왔다. 같은층 엘리베이터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상인이 가려는 곳은 6층 수협사무실. 5층 야외공간(하늘나루)까지 올라온 상인들은 사무실과 연결된 계단 앞을 막아선 수협 관계자들과 대치하기도 했다.

이날 수협과 구시장 상인 간 갈등이 극에 치달았다. 오전 9시 수협이 단전·단수를 단행하면서다.
수협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치가 이뤄졌다. 앞서 수협 측은 “단전·단수를 배제할 수 없다”고는 밝혔으나 이에 고민해왔다. 구상인들과 정면충돌하게 되는 조치라서다. 수협은 구상인들에게 제공했던 해수(海水)만을 끊어왔다. 상인들이 직접 해수공급업체와 계약을 해 장사를 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대신 수협은 법원에서 시행하는 명도 강제집행 조치를 지켜봤다. 하지만 지난달 23일까지 총 네 차례 시도에도 구상인들의 반발에 매번 무산됐다. 이에 이날 강력한 조치를 내렸다.

5일 수협이 단전·단수를 단행해 구 노량진수산시장의 모든 불이 꺼져있다. 조한대 기자

5일 수협이 단전·단수를 단행해 구 노량진수산시장의 모든 불이 꺼져있다. 조한대 기자

오전 10시쯤 구시장의 모든 불은 꺼져있었다. 수조마다 설치된 산소공급기·온도조절기도 작동이 멈췄다. 상인들은 수조에 담긴 바닷물을 연거푸 퍼 올렸다 붓기를 반복했다. 물을 붓는 과정에서 그나마 산소가 생겨서다.

꽃게·킹크랩을 파는 상인 박모(53)씨는 “지금 수조에 든 꽃게 수 십마리가 이미 다 죽었지만 몇 마리라도 건지려고 이렇게 물을 붓는다”며 “킹크랩 등 고가 물건도 있어 시가로 1000만원가량 손해를 보게 된다”고 토로했다.

다른 가게 앞은 죽은 방어들이 바닥에 놓여 있었다. 이 가게 상인은 “급하게 산소통을 연결해 수조에 산소를 넣고 있긴 한데, 그래봐야 몇 시간 버틸 뿐 결국 죽게 된다”며 “이미 죽은 고기들도 많다”고 말했다.

16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는 임모(42·여)씨는 “살아있는 생선·전복이 이리 많은데 어떻게 단전·단수를 하느냐. 오늘 한다고 얘기해주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5일 구 노량진수산시장이 단전·단수돼 상인들이 바가지로 바닷물을 붓고 있다. 산소공급기 멈춰 임시방편으로 산소를 만드는 거다. 조한대 기자

5일 구 노량진수산시장이 단전·단수돼 상인들이 바가지로 바닷물을 붓고 있다. 산소공급기 멈춰 임시방편으로 산소를 만드는 거다. 조한대 기자

하지만 수협 측은 “이달 4일까지 퇴거하지 않으면 단전·단수를 하겠다는 공고문을 구시장 내에 붙였고, 개별적으로 구상인들에게 내용증명도 보냈다”고 말했다. 5일이라고 못 박지는 않았지만 사전 예고를 했다는 의미다.

수협에 따르면 구시장에 상인 260여 명가량이 남아있는 상태다. 이들은 이날 조치로 장사를 지속하기 어려워졌다. 수협 관계자는 “불법시장 대책위원회 대표들과 6차례 회의를 열어 신시장 일부 면적 확대를 포함한 상인들의 요구를 수용했는데도 입주 협상이 결렬됐다. 상인들은 시장 정상화 의지보다 현재 자리에서 장사를 지속하겠다는 욕심만 드러냈다”고 말했다. 이어 “9일까지 입주 기회를 주고 있으니 불법 영업을 중단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에 윤헌주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비상대책총연합회 공동위원장은 “수협의 불법 강행에 동작경찰서에 수사 요청을 한 상태다. 한국전력과 서울시에도 민원을 넣을 예정”이라고 했다. 윤 공동위원장은 “상인들은 기존 노하우를 동원해 피해를 최소화할 것이지만 영업은 힘든 상태다. 법적 수단을 총동원해 생존권을 사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5일 오후 구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이 집회를 열고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김나현 기자

5일 오후 구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이 집회를 열고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김나현 기자

이날 오후 4시부터는 구상인들이 신시장이 바라보이는 구시장 입구에서 집회를 열었다. 상인 100여명(집회 측 추산)이 모였다. 이에 경찰 360명도 출동했다. 구시장 측 윤헌주 공동위원장은 “새벽 경매를 위해 오후 9시쯤부터 산지 생물을 실은 화물차량이 들어온다. 차량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주차장 입구를 막을 것”이라며 “전기를 올려줄 때까지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조한대·김나현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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