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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사업은 불법규정···지금 같으면 제2 김기사 힘들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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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친구와 함께 상경해 화장실도 없던 반지하 방에서 지내며 벤처 대박의 꿈을 키웠다. 서울 지리도 모르는 부산 촌놈(?)이었지만 내비게이션이라는 ‘한 우물’만 파며 자신의 사업을 일궜다. 지난 2015년 내비 서비스 ‘김기사’를 카카오에 626억원에 매각하며 스타트업 ‘엑시트’(투자금 회수) 신화를 쓴 박종환(46) ‘김기사컴퍼니’ 공동대표의 이야기다.

626억원 M&A ‘김기사 신화’ 쓴 박종환의 쓴소리

지금은 판교의 공유 오피스 ‘워크앤올’을 운영하면서, 스타트업의 육성ㆍ성장을 돕는 액셀러레이터를 병행하고 있는 김 대표는 지난 2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과 같은 규제 환경에서는 제2의 김기사가 나오기 힘들다”며 쓴소리를 던졌다.

네비게이션 앱 '김기사'로 스타트업의 성공 신화를 쓴 박종환 대표. 현재 공유오피스 사업 '워크앤올' 박종환 대표가 경기도 분당 판교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강정현 기자

네비게이션 앱 '김기사'로 스타트업의 성공 신화를 쓴 박종환 대표. 현재 공유오피스 사업 '워크앤올' 박종환 대표가 경기도 분당 판교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강정현 기자

그는 “요즘 스타트업들을 만나보면 ‘일단 해보자’라는 자신감보다는 ‘법적ㆍ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먼저 한다”라며 “기존에 없던 새로운 아이디어나 사업에 대해 일단 불법으로 규정하는 환경에선 스타트업이 창의성을 잃고 스스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본인 역시 스타트업 시절부터 각종 규제 때문에 적잖이 속앓이했다. 김기사 서비스가 2012년 당시 모 부처 장관상으로 내정됐을 때도 그랬다. 정부에서는 상을 받으려면 공식 인증이 필요한데, 실내에선 위치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며 기준 미달이라는 문제 제기가 들어왔다. 실외에서 작동하는 길 찾기 서비스인데도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상을 받았지만, 기술변화를 좇지 못하는 관(官)의 탁상 규제를 제대로 체험했다.

올 초에는 카카오가 김기사의 기술을 적용, 추가로 비용을 지불하면 바로 택시를 배차해주는 ‘즉시 배차’ 서비스를 도입하려 했다. 하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반대로 서비스가 막혔다. 그는 “소비자 편익을 높이는 서비스를 내놓으려고 해도 이를 막는 각종 규제 탓에 한국에선 사업하기 힘들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차량공유ㆍ카풀 서비스도 허용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대표는 아버지가 40여년 간 택시 운전대를 잡고 있는 현직 택시 기사다. 그만큼 택시 업계의 반발을 잘 이해한다고 했다.

그는 “법인 소속 택시기사가 차량공유 플랫폼에서 사업을 하게 되면, 회사에 내는 사납금이 2~3%대 수수료로 대체돼 소득이 오히려 늘어날 것”이라며 “호주처럼 우버 서비스당 1달러를 부담금을 받고 이를 택시 업계에 대한 보상금으로 지원한다면 개인택시의 반발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규제를 가하는 게 아니라, 바뀌는 시대에 맞춰 중재 역할을 하는 게 정부가 해야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스타트업의 인수ㆍ합병(M&A)이 어려운 한국의 풍토도 기술기반 스타트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규제라고 주장했다. 시장에 진입해 성과를 낸 스타트업들이 성공적으로 엑시트하는 사례가 많이 나와야 ‘투자→성장→회수→재투자’라는 벤처 생태계의 선순환이 이뤄진다. 하지만 복잡한 세제 관련 규제와 까다로운 기업공개(IPO) 요건, ‘회사를 팔았다’는 부정적인 인식 등이 여전히 M&A 시장 활성화를 막고 있다는 게 그의 견해다.

김 대표는 “스타트업이 성장해 대기업에 인수되면, 인력ㆍ사업구조를 그대로 유지해도 해당 스타트업은 대기업 계열사로 분류돼 새로운 규제를 받게 된다”며 “자금 여력이 있는 큰 기업에서 나서줘야 M&A가 활성화하는데, 큰 기업 입장에서는 이런 규제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힘든 것이 솔직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카카오가 김기사를 인수한 이후 3년 넘도록 대형 M&A 사례가 나오지 않고 있다”라며 “그러다 보니 국내 유망 스타트업들은 한국이 아닌 해외로 떠나고 있다”라고 안타까워 했다.

그가 판교에서 공유 오피스 사업을 시작한 것도 이런 점을 감안했다. 판교는 NHNㆍ넥슨ㆍ안랩ㆍ 한글과컴퓨터ㆍ포스코ICT 등 덩치가 큰 정보기술(IT) 대기업들은 많지만 임대료가 비싼 탓에 스타트업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스타트업들이 대거 판교에 정착해 실리콘밸리처럼 다양한 규모의 IT기업이 공존하는 지역 생태계를 만들면 자연스럽게 대기업-스타트업 간 M&A가 활발히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선배의 경험을 통해 후배의 시행착오를 줄여줄 멘토링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다”며 “성과가 괜찮은 2~3곳의 스타트업을 눈여겨보고 있는데 직접 투자하는 방안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국정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있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스타트업의 성장을 막는 규제 혁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한다”며 “스타트업이 마음껏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고, 투자를 확대할 수 있게끔 한다면 창업이 늘어나면서 스타트업 생태계가 활기를 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창업이 늘고, 이들이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고용하는 인원도 많아진다”며 “정부가 목표하는 대로 고용의 양과 질이 함께 좋아질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네비게이션 앱 '김기사'로 스타트업의 성공 신화를 쓴 박종환 대표. 현재 공유오피스 사업 '워크앤올' 박종환 대표가 경기도 분당 판교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강정현 기자

네비게이션 앱 '김기사'로 스타트업의 성공 신화를 쓴 박종환 대표. 현재 공유오피스 사업 '워크앤올' 박종환 대표가 경기도 분당 판교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강정현 기자

그는 인터뷰 말미에 후배들을 위한 따끔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김 대표는 “내가 창업할 때와 비교해보면 창업 생태계가 나아진 것은 분명하다”며 “스타트업도 외부 지원에 의존하려 하지 말고, 스스로 생존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냥 막연히 ‘약간의 도움을 받으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시작하는 사람은 차라리 창업의 길로 들어서지 않는 게 더 행복할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박종환 대표는

부산에서 태어나 동아대 컴퓨터공학과 학사, 부산대 컴퓨터공학과 석사를 마쳤다. 1999년 상경해 한국통신정보기술(KTIT)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으며, 2001년에는 위치 기반 기술 벤처회사인 포인트아이에서 피처폰용 내비게이션을 개발했다. 2010년 김원태ㆍ신명진 대표(현 김기사컴퍼니 공동대표)와 함께 국민 내비게이션이라는 별칭을 얻은 ‘김기사’를 만든 록앤올을 창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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