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체 분진 마신다" 대구 첫 동물화장장 주민 반대로 난항

중앙일보

입력

대구 첫 동물화장장 건축허가 심의가 예고된 지난달 26일 오전 대구 서구청에서 상리동 주민이 화장장 건설에 반대하며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 첫 동물화장장 건축허가 심의가 예고된 지난달 26일 오전 대구 서구청에서 상리동 주민이 화장장 건설에 반대하며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의 첫 동물화장장 건립이 난항을 빚고 있다. 대법원이 "화장장 건립을 막을 수 없다"고 한 상황에서 주민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서다.

대구 서구 상리동에 들어설 동물화장장 #주민들 "학교 등 민가 바로 앞엔 안 돼"

4일 대구 서구청에 따르면 이르면 한 달 내에 동물화장장 건축 심의가 열릴 계획이다. 이 심의를 통해 서구청은 동물화장장 건립의 환경적 타당성, 주변과의 조화 등을 검토한다. 서구청 도시재생과 관계자는 "심의 후 건축과에서 건립을 결정한다"며 "심의 때 주민 의견을 듣긴 하지만 건축이 적법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상황에서 반대 의견이 반영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26일 오전 대구 서구청 앞에서 상리동 주민 500여 명이 동물화장장 건설을 도시계획 심의에 반대하며 시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6일 오전 대구 서구청 앞에서 상리동 주민 500여 명이 동물화장장 건설을 도시계획 심의에 반대하며 시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상 2층, 연면적 1924㎡ 규모로 서구 상리동에 들어설 예정인 동물화장장은 주민 반대로 법정까지 간 사안이다. 지난해 3월 한 사업자는 동물전용 장례식장 등을 갖춘 동물화장장 건축 허가를 신청했다. 소식이 알려지자 주민들은 반대했고 서구청은 건축 신청서를 반려했다. 그러자 사업자는 같은 해 5월 서구청을 상대로 건축허가 신청 반려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서구청은 1심과 2심에서 패소했고 사업자는 상리동에 터를 매입했다. 서구청이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올해 8월 16일 대법원은 "적법한 동물화장 시설을 구청이 반려할 수 없다"며 기각했다. 올 9월 10일 사업자는 다시 건축 신청서를 구청에 제출했다.

서구청은 난감한 입장이다. 대법원까지 사업자의 손을 들어준 마당에 심의를 더는 미룰 수가 없어서다. 지난달 26일 한 차례 심의가 열릴 예정이었지만 주민 반대로 무산됐다. 이날 주민 500명이 서구청 앞에 몰려 "서구엔 음식물쓰레기 매립장, 분뇨처리장, 하·폐수처리장 등 이미 혐오시설이 많다"고 외치며 시위했다. 일부 주민은 심의실로 찾아가 입구를 가로막는 등 항의했고 결국 심의는 미뤄졌다.

지난달 19일 오후 대구 서구지역 주민 200여명이 서구청 앞에서 상리동 인근 동물화장장 건립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동물화장장건립반대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서구 상리동은 대구염색산업단지를 비롯해 하·폐수처리장, 음식물쓰레기매립장, 쓰레기매립장 등 온갖 혐오시설로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 여기에 동물화장장까지 들어선다니 분통이 터진다“며 ’집단행동을 불사하겠다“는 반응이다. [뉴스1]

지난달 19일 오후 대구 서구지역 주민 200여명이 서구청 앞에서 상리동 인근 동물화장장 건립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동물화장장건립반대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서구 상리동은 대구염색산업단지를 비롯해 하·폐수처리장, 음식물쓰레기매립장, 쓰레기매립장 등 온갖 혐오시설로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 여기에 동물화장장까지 들어선다니 분통이 터진다“며 ’집단행동을 불사하겠다“는 반응이다. [뉴스1]

현행 동물보호법상 애완동물의 사체는 화장을 하거나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려야 한다.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보호단체 등에 따르면 공식 등록된 전국의 동물화장장은 20곳. 해마다 60만 마리가 넘는 사체가 나오지만 지난해 화장장에서 처리한 사체는 3만여 마리다.

주민들은 동물화장장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개인 사업자가 아닌 지자체가 나서서 체계적으로 화장장을 만들고 관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화장장 입지 관련 명확한 세부 기준은 없다. 개인 사업자가 건축 허가를 받은 뒤 지자체에 등록만 하면 운영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동물 화장장을 두고 전국 곳곳에서 지자체와 주민, 개인사업자 간에 소송 등 삼각갈등이 빚어진다.

석휘영 동물화장장 반대대책위원장은 "동물화장장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동물화장장 바로 100m 앞에 학교가 있는데 아이들이 화장으로 나오는 분진을 마시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동물화장장은 지자체나 중앙정부가 맡아서 해야지 개인업자가 신청한다고 무분별하게 허가해줘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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