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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이 북한에 가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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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호 24면

an die Musik: ‘덕원의 순교자들에게 … ’ 

왜관의 분도(베네딕도) 출판사에서 낸 ‘명상을 위한 첼로와 오르간 음악’ 음반. 수익금은 덕원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운동에 쓰인다.

왜관의 분도(베네딕도) 출판사에서 낸 ‘명상을 위한 첼로와 오르간 음악’ 음반. 수익금은 덕원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운동에 쓰인다.

집 근처에 일산성당이 있다. 설립 60년을 넘긴 이 성당은 붉은 벽돌로 쌓은 본당이 장중하다. 성당과 함께 나이를 먹은 아름드리나무들도 숲을 이뤄 촘촘히 들어선 아파트 단지 가운데서 쉼터가 되어 준다. 특히 늦가을에는 은행나무·느티나무의 노랗고 빨간 이파리가 눈처럼 휘날려 멀리 단풍구경 갈 일이 없다.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발길이 성당으로 향한다.

성당 뜰에서 열린 바자회를 구경하다 골라 온 CD가 ‘명상을 위한 첼로와 오르간 음악’이다.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들어보니 연주가 참 좋다. 음향의 장인 황병준이 소리를 매만져 음색도 나무랄 데 없다. 첼로는 김호정 경북대 교수, 오르간은 명동성당 오르가니스트 김윤희씨가 맡았다. 녹음 장소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이다. 그 곳의 오르간을 사용했다는 의미다. 수록곡은 바흐/구노의 ‘아베마리아’,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 등 익숙한 것들과 요제프 라인베르거의 ‘애가’ ‘저녁노래’ ‘목가’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음반 표지에 ‘Homage to Martyrs of Tokwon’(덕원의 순교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며)라는 글이 적혀 있다. 음반 내지에도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이형우 원장의 인사말이 실려 있다. “…오늘 우리는 한국 전쟁을 전후로 하여 북한에서 선교하다가 생명을 바쳐 신앙을 증거한 사제와 수도자 서른여덟 분의 고귀한 희생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음반은 한국 가톨릭 순교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한 ‘덕원의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북한에는 해방 전부터 세 개의 가톨릭 교구가 있었다. 평양교구, 함흥교구, 그리고 원산 인근의 덕원수도원을 관할하는 덕원교구다. 베네딕도회는 1909년 서울에 한국 최초의 가톨릭 수도원을 세웠으나 1927년 덕원(德源)으로 옮겼다. 덕원수도원은 당시 북한에서 가장 큰 수도원이었다. 독일인 성직자와 수도자를 비롯해 한국인 신부·수사·잡역부 등 100여 명이 살았고, 빵 공장·포도주 공장·인쇄소·신학교까지 포함한 거대 시설이었다.

그러나 공산정권하에서 종교의 자유는 허용될 수 없었다. 해방 후 소련군 주둔이 끝나고 북한 정권이 들어서자 종교 탄압이 본격화됐다. 탄압은 특히 덕원수도원에 집중됐다. 처음에는 재산몰수 등 경제적 탄압으로 시작했으나 결국 성직자 상당수가 한국 전쟁을 전후로 북한 감옥에서 순교하게 된다. 남한으로 피난 온 성직자들은 독일인 수도사들과 경북 왜관에 새로운 수도원을 세운다. 그것이 현재의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이다. 덕원 순교자들을 위한 음악을 왜관 수도원에서 녹음한 이유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북한을 방문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궁금한 점이 많다. 교황은 방문하는 나라에서 미사를 집전하는데 현재 북한에는 신자도 사제도 없지 않은가. 꽃술을 들고 문재인 대통령을 환영하던 평양 시민들이 가톨릭 신자로 변신하는 걸까. 사제가 없으니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하고 있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평양으로 가야 할까.

교황은 순방 때 순교 성지를 방문한다. 서울에 왔을 때도 서소문 순교 성지를 직접 찾았다. 북한에 가면 덕원을 찾아갈까.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방법이 있다. 왜관 수도원장은 덕원교구장 서리를 겸하고 있다. 그를 만난다면 교황이 덕원 순교자들을 기리는 셈이 되지 않을까.

교황의 방북 소식에 일산성당 마당에서 챙겨온 음반을 다시 들어본다. 마지막 곡은 샤를 구노의 ‘Les Martyrs’(순교자)다. 낯선 곡이라 알아보니, 1839년 프랑스인 세 선교사가 조선 한양 새남터에서 순교했다는 소식을 듣고 구노가 작곡했단다. 그와 우리의 인연이 기구하다. 한국 가톨릭은 북한 공산정권 훨씬 이전부터 이 땅에서 순교의 고난을 겪었다.

글 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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