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틴틴경제] 날씨 따라 울고 웃는 기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5면

태풍 매미 때문에 한숨 짓는 사람이 많습니다. 벼가 쓰러지고 과일이 우수수 떨어지는 바람에 농민들은 시름에 잠겼고, 과일.채소값이 크게 올라 소비자들의 지갑에도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태풍 덕을 본 기업도 있습니다.

시멘트 같은 건설 재료를 만드는 업체와 라면 회사입니다. 무너진 집, 끊어진 길과 다리를 고쳐야 하고, 수재민 구호품으로 라면이 많이 나가기 때문입니다.

태풍뿐 아니라 그해 비 오는 날이 많았는지, 기온은 예년보다 높았는지 낮았는지 등 날씨에 따라 경제는 큰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요즘 기업들은 길게는 1년 뒤, 짧게는 2~3일 뒤의 날씨가 어찌될지를 살펴 잘 팔릴 물건을 내놓는 식의 경영을 펼치고 있습니다.

겨울이 아주 따뜻하면 두꺼운 옷을 만드는 업체나 스키장 등이 울상을 짓는 것 등은 날씨와 경제의 관계를 보여주는 쉬운 예입니다.

올해처럼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어떨까요. 우선 여름 날씨가 예년보다 선선하므로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이 잘 팔리지 않습니다. 하이마트의 에어컨 판매는 지난해 절반 정도라고 합니다. 반면 습기.악취 제거제는 대형 할인점에서 지난해보다 20% 정도 더 팔렸습니다. 비가 오면 부침개가루도 잘 팔립니다. 외출을 삼가고 집에서 부침개를 부쳐먹는 사람들이 늘기 때문이라는 이유죠. 또 집에서 할 수 있는 TV홈쇼핑.인터넷 쇼핑 등도 재미를 봅니다.

언뜻 관련 없을 것 같지만 비가 자주 오면 자동차도 잘 안 팔립니다. 차 계약을 하기 전에 영업소에 들러 한번 차를 살펴보는 게 보통인데, 비가 오면 "나중에 가서 보고 사지"하면서 미루기 때문이지요.

올해 8월은 자동차회사 파업에다 이틀에 한번 꼴로 비가 내려 자동차 판매가 최악이었습니다. 8월 한달 국내 시장에서 새차 8만6천여대가 팔렸는데, 이는 지난해(14만7천여대)의 58.5%입니다.

기후가 많은 영향을 주기에 기업들은 앞으로 날씨가 어떻게 될지를 알아보고 그에 따른 전략을 세웁니다. 패션업체인 ㈜신원은 올 가을이 짧고 추위가 일찍 온다는 정보에 따라 벌써부터 가을 옷은 조금만 만들고 겨울 옷을 내놓고 있습니다.

평균 기온이 오르는 해에 제약회사들은 감기약을 줄이고 알레르기 약을 늘립니다. 날씨가 따뜻하면 꽃 피는 기간이 길어져 꽃가루가 많이 날리고, 이에 따라 알레르기 환자가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전력은 날씨에 따른 전력 수요 예측 시스템을 갖고 있습니다. 전기는 저장하기가 힘들어 안 쓰면 손해가 크니까 쓸 만큼만 만들려는 이유 때문이죠. 한전은 올 여름 최고 수요가 4천8백21만㎾로 예상했는데, 이는 실제로 쓴 전기량(4천7백39만㎾)과 1.7% 차이밖에 안 난 것입니다.

LG25.훼미리마트 같은 편의점 체인도 날씨 정보를 잘 이용하는 기업들입니다. LG25는 지난 5년간 어떤 날씨에서 어떤 물건이 얼마나 팔렸는지 하는 자료를 확보한 뒤 각 지점에서 이를 받아볼 수 있게 했습니다. 여름 온도가 섭씨 1도 오를 때 아이스크림이 몇개 더 팔리는지 하는 식입니다. 여기에 맞춰 물건을 준비하면, 남은 김밥.샌드위치.어묵을 버림으로써 생기는 손해가 많이 줄어듭니다. 또 팔리지 않을 음료 등을 잔뜩 쌓아놓지 않아도 됩니다.

날씨에 따른 손해를 막고자 보험을 들기도 합니다.

비가 오면 손님이 크게 줄어드는 에버랜드는 매년 튤립 축제와 장미축제를 여는 4~6월엔 주말과 공휴일 날씨를 대상으로 '날씨 보험'을 듭니다. 보험료를 낸 뒤 주말이나 휴일 오전에 비가 1㎜ 이상 오면 보험금을 받는 방식이죠. 손님이 한창 몰릴 시기에 비가 오면 손해가 너무 커 보험을 들어 놓는 것입니다. 외국에는 영화제작사.광고회사들이 날씨 때문에 촬영 기간이 너무 길어지면 보상금을 받는 보험도 있습니다.

날씨를 고려한 경영은 미국.유럽.일본에서 1990년대 초반부터 널리 퍼졌습니다. 수퍼컴퓨터가 기상 예보에 사용되면서 정확한 예측이 가능해진 덕분입니다. 우리 기업들은 이보다 10년쯤 뒤진 90년대 후반에야 기상 정보를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업들이 날씨 정보를 잘 활용하려면 정확하고 세세한 자료를 주는 정보 업체들이 있어야 합니다. 기상청은 '서울.경기 오후 한때 비'식으로 얘기하지 '롯데월드가 있는 잠실에 오후 2~3시 사이에 소나기'라고 하지는 않으니까요.

기업이 관심을 갖고 있는 지점의 날씨를 콕 찍어 예보해 주는 '민간 기상예보업체'가 우리나라에는 케이웨더 등 9개가 있습니다. 우리보다 지역이 넓고, 기업들이 날씨 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미국에서는 4백50여개가 활동 중입니다.

산업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