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병역거부자 앞으론 감옥 안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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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14년 전 판결을 뒤집고 종교적 이유를 포함한 ‘양심적 병역거부’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입영 거부로 항소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승헌(34)씨 사건의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창원지법 형사합의부에 돌려보냈다.

징역형 받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 #대법, 9:4로 무죄 취지 파기 환송 #대체복무 36개월 합숙 근무 #정부안 이르면 다음주 발표

재판장인 김명수 대법원장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병역 이행을 강제하고 불이행 시 형사처벌하는 건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며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된다”고 밝혔다. 여기서의 양심은 ‘착한 마음’이 아니라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가치적·도덕적 마음가짐’을 뜻한다.

지금까지 양심적 병역거부의 처벌 근거는 병역법 88조 1항의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거나 소집에 응하지 않는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규정이다. 과연 ‘정당한 사유’에 종교적 신념이 포함될 수 있느냐는 오랜 논란이었다. 최종영 대법원장 시절인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12명 중 11명의 다수 의견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는 정당한 사유가 아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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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헌법재판소는 “병역의 종류 중 하나로 대체복무제를 마련하지 않은 것은 헌법불합치”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처벌 조항 자체에 대해서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도 헌재는 “양심의 진실성이 인정될 경우 법원은 대체복무제가 도입되기 전이라 하더라도 무죄를 선고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 후 4개월 만에 나온 대법원 선고는 헌재의 기대에 부합했다.

대법관 13명 중 9명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했다. “국가가 양심에 반하는 의무를 부과한 것에 대해 응하지 않았다고 해서 형사처벌을 가하는 것은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에도 위배된다”는 것이 다수 의견이다.

그러나 김소영·조희대·박상옥·이기택 대법관은 “정당한 사유는 질병이나 재난 등 객관적인 사정에 한정되고 양심적 병역거부 같은 주관적 사정은 해당할 수 없다”면서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엄중한 안보상황, 병역의무의 형평성에 관한 강력한 사회적 요청 등을 감안하면 양심적 병역거부는 인정될 수 없다”고 반대 의견을 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관이 모여 법원 전체의 판결 방향을 정한 것이기 때문에 오씨뿐 아니라 양심적 병역거부로 재판을 받고 있는 930여 명도 앞으로 무죄 선고를 받게 된다.

오씨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 수준 높은 관용을 실감했다. 앞으로 성실히 대체복무를 하겠다”고 말했다. 인권단체 등에선 이번 판결을 환영했지만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에선 성급한 판단”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국방부는 이르면 다음주 36개월 합숙 근무 등을 담은 대체복무 정부안을 발표한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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