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기피자' 족쇄 벗은 여호와의 증인…"양심의 댓가로 대학은 자퇴했고 시험도 포기했습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나는 종교적·양심적 병역거부자입니다"

1일 오전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상고심. 대법원은 이날 종교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병역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최승식 기자]

1일 오전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상고심. 대법원은 이날 종교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병역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최승식 기자]

“병역거부 이후 언제 교도소에 수감될지 모른다는 공포심과 불안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결국 준비 중이던 시험은 중도 포기했고 다니던 대학도 자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인 김주환(31)씨는 종교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병역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결론 내린 1일 대법원 선고 직후 주먹을 움켜쥐며 활짝 웃어 보였다. 지난 10년간 ‘병역 기피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온 억울함이 해소된 듯한 웃음이었다.

'병역기피자' 오명 벗게 된 병역거부자들

종교(여호와의 증인) 및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김주환씨. 김씨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형을 선고받아 1년 6개월의 수감 생활을 견뎌야 했다. [중앙포토]

종교(여호와의 증인) 및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김주환씨. 김씨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형을 선고받아 1년 6개월의 수감 생활을 견뎌야 했다. [중앙포토]

이날 대법원 공개변론을 방청하고 나온 김씨는 “한국의 수많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지금껏 병역기피자라는 오명을 받아왔는데 오늘 최고법원인 대법원이 그들의 양심을 인정해줬다”며 “대체복무제도가 잘 정착하고 병역거부자들도 의무를 다해 사회적 인식까지도 한 층 개선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씨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다. 군 복무는 사실상의 ‘전쟁 연습’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종교와 양심의 자유에 따라 입대를 거부했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은 결코 달갑지 않았다. “군대에 가기 싫어 꼼수 부리는 것 아니냐”는 의심 때문이었다.

대학 자퇴하고 보험 계리사의 꿈도 좌절

대학 생활 역시 순탄치 않았다. 병역법 위반으로 학교에서 제적된다면 수감 생활을 마친 뒤에도 재입학이 불가능했다. 학업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김씨는 결국 자퇴를 선택했다. 보험 계리사의 꿈도 접어야 했다. 1차 시험까지 합격한 상황이었지만 언제 수감될지 모른다는 공포심에 2차 시험을 제대로 준비할 수 없었다고 한다.

김씨는 출소 이후에도 제대로 된 사회 생활을 할 수 없었다. '범죄자'로 낙인 찍혀 대부분의 국가 시험엔 응시조차 할 수 없었고, 기업 입사에도 어려움이 따랐다고 한다. [중앙포토]

김씨는 출소 이후에도 제대로 된 사회 생활을 할 수 없었다. '범죄자'로 낙인 찍혀 대부분의 국가 시험엔 응시조차 할 수 없었고, 기업 입사에도 어려움이 따랐다고 한다. [중앙포토]

사회적 편견과 불합리한 대우는 2016년 2월 김씨가 1년 6개월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이후에도 여전했다고 한다. 김씨는 “출소 이후 다시 공부도 시작하고 직장도 구해야 했지만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며 “징역형을 살고 나왔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국가시험은 응시조차 할 수 없었고, 기업 입사지원도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김씨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자리는 일용직 아르바이트뿐이었다. 정규직 일자리를 구해 4대 보험에 가입하는 순간 “위 사람은 병역법을 위반한 범죄 전력이 있다”는 내용의 공문이 회사로 날아왔기 때문이다. 2013년 한 금융기관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던 중 퇴사 조치를 당한 것도, 일용직 일자리를 전전한 것도 모두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한 2차 피해였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심사 기준 마련 등 후속조치 마련돼야"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판결 후 재판 당사자인 오 씨(가운데)와 변호인, 지인 등이 법정을 나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판결 후 재판 당사자인 오 씨(가운데)와 변호인, 지인 등이 법정을 나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김씨는 이날 대법원 판결을 반기면서도 자칫 ‘거짓 병역거부자’가 생길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선 우려를 표했다.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향후 종교와 양심에 의한 결정이 아니라 단순히 군 복무를 피하기 위해 병역을 거부하는 사례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공개변론에서도 이야기가 나왔지만 양심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영역일 수 있기 때문에 양심적 병역거부를 악용하는 사례를 막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며 “진짜 양심적 병역거부에 해당하는지 심사하는 기구를 마련하고 심사 기준도 세분화하는 등의 후속조치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