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거부에 입장 바꾼 대법…핵심은 '소극적 양심의 자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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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양심적병역거부와 관련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상고심에 김명수 대법원장(가운데), 김소영 대법관(대법원장 왼쪽) 등이 참석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1일 오전 양심적병역거부와 관련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상고심에 김명수 대법원장(가운데), 김소영 대법관(대법원장 왼쪽) 등이 참석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일 2004년 판례를 뒤엎고 종교·양심적 병역거부를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라고 인정한 것은 국가가 국민의 양심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요건을 전혀 다르게 판단한 데 핵심이 있다. 특히 ‘소극적 양심 실현의 자유’에 대해 법이 두텁게 보장해줘야 한다는 점이 과거와 달라진 점이다.

사법부는 기본적으로 종교·양심적 병역거부를 개인의 신념에 따라 본인이 당면한 병역 의무를 따르지 않는 소극적 행위로 해석한다. 개인에 신념에 근거해 병역제도를 바꾸라고 요구하거나 국방 의무 자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적극적이지 않다는 뜻에서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이같은 소극적 양심실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2004년 대법원이 병역거부자의 소극적 양심 자유를 병역의무로 제한할 수 있다고 본 것과 차이가 있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집총거부’라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군대 입영을 거부하는 것에 대해 형사처벌할 수 없다고 선고하며, 그 핵심 근거로 '소극적 양심실현의 자유에 대한 본질적 내용 침해 위험'을 들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3명 중 9명이 이런 의견을 다수 의견으로 냈다. 반면 2004년에는 13명 중 12명의 대법관이 해당 내용이 본질적 내용 침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1일 오전 양심적병역거부와 관련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상고심에 김명수 대법원장(가운데), 김소영 대법관(대법원장 왼쪽) 등이 참석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1일 오전 양심적병역거부와 관련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상고심에 김명수 대법원장(가운데), 김소영 대법관(대법원장 왼쪽) 등이 참석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현 대법원과 2004년 대법원은 ‘집총거부’가 소극적 양심실현의 자유에서 온 것이라는 데는 입장이 일치했지만, 이 같은 자유를 병역의무로 제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 반대 입장을 냈다.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국가가 양심에 반하는 작위의무(법적으로 해야 할 의무)를 부과한 것에 대해 단지 소극적으로 응하지 않은 경우에 국가가 처벌 등 제재를 가함으로써 이행을 강제하는 '소극적 양심실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기본권에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험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소극적 부작위(의무가 있는데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양심실현의 자유는 양심의 실현과정에서 다른 법익과 충돌할 수 있게 되고, 이때에는 필연적으로 제한이 수반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러한 경우라면 소극적 양심실현의 자유가 제한받는다고 해서 곧바로 양심 자유의 본질적인 내용에 대한 침해가 있다고 말할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이지상 기자 groun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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