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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질문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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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공자(孔子)님 말씀 배우려면 중국이 아니라 한국에 와야 하는 거 아냐?

공자의 고향인 중국 취푸(曲阜)에 간다는 말에 친구가 한 말이다. 일리가 있다. 문혁 시기(1973년), 4인방 일파들은 린뱌오(林彪)를 공격하기 위해 공자와 유교를 끌어들이기도 했다. 이른바 '비림비공(批林批孔)' 운동이다. 유교의 상징물은 파괴됐고 공자 사상이 적힌 책들은 불타거나 땅에 묻혔다.

그 이후에도 유교는 배격의 대상일 뿐, 대우를 받지 못했다. '만악의 근원'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기에 "유교 사상이 온전히 보존된 곳은 조선 왕조 500년을 관통하면서 한국의 문화로 자리 잡은 한국"이라는 말이 나온다.

매년 성균관대 대성전에서는 공자를 비롯한 선성선현에게 제사를 지내는 석전대제가 열린다 [출처 중앙포토]

매년 성균관대 대성전에서는 공자를 비롯한 선성선현에게 제사를 지내는 석전대제가 열린다 [출처 중앙포토]

그랬던 공자가 다시 중국 문화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시진핑은 공산당 창당 이후 처음으로 공묘(孔廟)를 참배했고 공자연구원을 방문해 유교적 전통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한 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식으로 유교를 공격했던 공산당이 공자를 다시 모셔온 셈이다.

공자의 생가와 무덤이 있고 그의 자손들이 모여 대대로 마을을 지켜 온 취푸가 중국의 주요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이다.

중국인에게도 잊혔던 전통문화

오전 7시 50분, 취푸에 있는 공묘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매일 아침 8시 공묘 입구를 개방하는 전통 행사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사진 차이나랩]

[사진 차이나랩]

[사진 차이나랩]

[사진 차이나랩]

중국 전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장사진을 이룬 가운데 '춘추전국시대' 노(魯)나라의 모습을 재연한 공연이 20여 분 가까이 진행된다. 닝보에서 왔다는 한 청년은 "중국에 이런 전통이 있었다는 게 놀라울 뿐"이라며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사진 차이나랩]

[사진 차이나랩]

[사진 차이나랩]

[사진 차이나랩]

전통문화도 세련된 방식으로

외국인들에게 공자를 알리는 방식은 좀 더 세련됐다. 쾌적한 분위기의 유교문화원에서 공자의 사상을 강연한다. 공자를 추모하는 공간에서는 중국의 전통 복장을 하고 논어를 직접 써보는 체험 행사도 제공한다. 유교 문화에 관심이 없던 이들도 눈이 번쩍 뜨일만하다. 일단 재미있기 때문이다.

[사진 차이나랩]

[사진 차이나랩]

[사진 차이나데일리]

[사진 차이나데일리]

[사진 차이나랩]

[사진 차이나랩]

덕분에 필자도 중학교 한문 시간에 배웠던 논어 한마디를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學而時習之(자왈학이시습지)
不亦說乎(불역열호)
배우고 때때로 이를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有朋自遠方來(유붕자원방래)
不亦樂乎(불역락호)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人不知而不慍(인부지이불온)
不亦君子乎(불역군자호)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섭섭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그들은 왜 공자를 다시 살려내려 하는가?

현재 중국 지도자들은 유교에 내재한 사회주의적 가치를 찾음으로써 유교와 사회주의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공자의 화이부동(和而不同)과 마오쩌둥의 평등을 나란히 놓고 싶어 한다. 사람(민생)을 위한 근본으로 하는 정치(以人爲本), 조화 사회(和諧社會) 등은 이를 보여주는 키워드들이다.

중국몽(中國夢)

"위대했던 중화 민족의 시기를 부흥시키겠다"는 시진핑의 국가 비전이다. 이것 역시 유교의 전통과 떨어질 수 없다. 위대했던 중화 민족의 시기는 공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상적 연장선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천안문 광장에 설치됐던 9.5m의 거대한 공자상은 지금도 국가박물관 내부에 모셔져 있다.

공자를 되살린 중국, 그들이 만들어갈 미래가 더욱 궁금해진다.

차이나랩 김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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