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만에 밝혀진 5·18 성폭력 “지금도 군복만 보면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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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이 저지른 잔혹한 성폭력 범죄가 38년 만에 정부 조사를 통해 처음으로 확인됐다.

정부, 계엄군 성폭행 17건 첫 확인 #가해자 소속 부대 3·7·11공수 추정

여성가족부·국가인권위원회·국방부가 참여한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은 계엄군이 17건의 성폭행을 저질렀고, 연행·구금된 사람이나 시민을 성추행하고 성고문을 가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31일 밝혔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5월 계엄군 성폭력 피해자의 증언이 나오자 조사에 착수했다. 지난 6월부터 10월 말까지 피해자 증언, 자료 총서(61권)를 비롯하여 그간 발간된 출판물(22권), 약 500여의 진술, 이외 각종 보고서 및 방송·통계자료 등을 분석했다.

당시 성폭행은 10대 학생부터 30대 주부까지 무차별적으로 발생했다. 피해자들은 총으로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성폭행 피해를 보았다고 진술했다. 2명 이상의 군인이 피해자 한 명을 집단 성폭행한 사례도 여러 건 확인됐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A양은 1980년 5월 19일 광주 동구 부근에서 친척을 찾으러 나섰다가 계엄군에 끌려가 성폭행을 당했다. 이 학생은 정신질환을 얻어 85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이듬해 퇴원했으나 끝내 분신자살했다. A양의 어머니는 “악마가 짓밟았다”고 절규했다고 한다.

회사원 B 씨는 80년 5월 21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계엄군에게 붙잡혀 심한 구타와 성폭행을 당했고,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병사했다.

계엄군은 연행·구금된 여성들을 수사하는 과정에서도 성고문 등 성폭력을 저질렀다. 이들의 만행은 대상을 가지리 않았다. 공동조사단은 “시위에 가담하지 않은 여학생, 임산부 등을 성추행하는 등 인권침해 행위가 다수 확인됐다”고 밝혔다. 여고생이 강제로 군용트럭에 실려 가는 모습이 목격됐고, 광주지검 검시 조서와 5·18 의료활동 기록에서 숨진 여성들의 유방과 성기가 훼손된 사실을 확인했다.

피해자들은 38년이 지난 지금도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한 피해자는 “지금도 얼룩무늬 군복만 보면 속이 울렁거리고 힘들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정신과 치료도 받아봤지만 성폭행당한 것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여성은 “스무 살 그 꽃다운 나이에 인생이 멈춰버렸다”고 절망했다.

이번 조사에선 인면수심의 범죄를 저지른 계엄군의 신원과 소속 부대의 윤곽이 드러났다. 공동조사단은 “피해자 진술과 5·18 당시 작전 상황을 비교 분석한 결과, 가해자나 가해자 소속 부대를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3공수, 7공수, 11공수특전여단 등 3개 부대로 좁혀진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단 관계자는 “조사단에 수사권이 없어 가해자·부대를 특정하지 못했다. 군 인사자료를 확보하면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이숙진 공동조사단장(여성가족부 차관)은 “이번 조사결과를 곧 출범할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넘겨 추가로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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