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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도 마윈도 진융 팬, 15억이 애도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진융의 별세를 1면 머리 뉴스로 전한 중국 일간지들. 무협소설 대가 진융(김용·金庸)은 94세 로 지난 달 30일 숨졌다. [사진 중국 포털사이트 터우탸오]

진융의 별세를 1면 머리 뉴스로 전한 중국 일간지들. 무협소설 대가 진융(김용·金庸)은 94세 로 지난 달 30일 숨졌다. [사진 중국 포털사이트 터우탸오]

14억9000만명이 한 사람의 죽음을 애도했다.

94세 별세 … 중화권 언론 1면 톱기사 #대표작 『사조영웅전』 교과서 실려 #빼어난 문장에 탄탄한 인문학 내공 #덩샤오핑 “당신 책 대부분 읽었다” #마윈 “무협정신은 알리바바 핵심”

총칼로 천하를 평정한 영웅호걸도 아니고 사업을 일으켜 부(富)를 축적한 자산가도 아니었으며 고담준론으로 세간의 이목을 사로잡은 논객도 아니었다. 한 자루 필봉으로, 그것도 통속 장르라고 폄하받기 일쑤인 무협 문학으로 일가를 이룬 진융(김용·金庸)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지난달 30일 94세를 일기로 영원히 강호(江湖)와 결별했다.

31일 오후 3시 현재 트위터와 유사한 중국의 모바일 서비스인 웨이보에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해시태그가 14억 9000만 건에 달했다. 그의 죽음이 알려진 이후 불과 20여 시간만이다. 중국 대륙의 네티즌 인구가 8억명 남짓인 점을 감안하면 중국어를 구사하는 지구촌의 모든 인구가 한 두번씩 인터넷 공간에 추모 글을 남기거나 리본을 단 셈이다.

중화권 언론들은 31일자 조간에서 일제히 진융의 별세를 1면톱 기사로 다뤘다. 중국 대륙과 중국어로 발행되는 싱가포르 최대 권위지 연합조보조차도 1면 톱 기사였다. 이 신문은 “진융의 대표작 ‘사조영웅전’은 싱가포르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부분 전재되어 (화교 후예가 인구의 70%인) 싱가포르 청소년들로 하여금 중국 문화를 이해하는 데 대단한 기여를 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실제로 중국어권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였다. 중국출판과학연구소 전국 조사에서 진융은 바진(巴金), 루쉰(魯迅), 충야오(瓊瑤) 등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그가 압도적인 사랑을 받은 건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그의 빼어난 문장이다. 그 어떤 작가 보다도 진융의 문장은 중국어의 미학을 살린 유려(流麗)함과 유장(悠長)함이 있었다는 평가다. 하버드대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중국 문학 전공자들에게 진융의 작품이 텍스트로 채용된 사실이 이를 대변한다.

그의 문장의 바탕은 중국 역사와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었다. 탄탄한 인문학적 ‘내공’이 바탕이 되었기에 개별 문장마다의 수려함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격조가 넘쳤고, 거기에 압도적인 흥미를 유발하는 넘치는 서사(敍事), 즉 스토리텔링이 결합됨으로써 작품의 흡인력이 완성되었다는 의미다.

진융이 숨지자 중국의 한 시기를 이끈 개혁 개방의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도 열렬한 애독자였다는 사실이 새삼 화제가 됐다.

문화비평가 올리버 차우의 증언에 따르면 덩샤오핑은 비밀요원을 홍콩에 보내 진융의 소설을 구해 오게 했다. 1981년 진융을 직접 만난 덩샤오핑은 “우린 이미 오랜 친구와 같다. 당신의 책을 대부분 읽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문화대혁명기에 금서로 지정됐던 진융의 작품은 1981년에야 중국 대륙에서 해금됐다. 그는 당대 홍콩의 지식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마오쩌둥(毛澤東)의 문화대혁명에 비판적이었다. 진융은 자신이 1966년 창간한 일간지 명보(明報)에 “문혁은 중국의 문화와 전통을 파괴한다”는 사설을 실었다.

진융과 같이 저장(浙江)성이 고향인 마윈(馬雲) 알리바바 그룹 회장 역시 진융의 열혈 팬이다. 마윈은 “진융에 의해 고취된 무협 정신은 알리바바 그룹의 핵심 가치가 됐다”며 “진융은 오랜 시간 나에게 깊은 영감의 원천이었고, 그는 영원히 내 마음속에 있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마윈은 알리바바 그룹의 고급간부 모두에게 소설 속에 나오는 무술가의 이름을 별명으로 붙여줬으며 그 자신도 진융의 소설 주인공인 검술의 달인 펑칭양(風淸揚)을 별명으로 택했다.

진융에 대한 추모는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온라인에 댓글을 남긴 한 네티즌은 “중·고생 시절 나의 시험 성적을 떨어뜨린 장본인이 바로 김용이었다”며 “밤을 하얗게 새워 김용의 작품을 읽고 찬탄하던 시절이 그립다”고 적었다. 국내에서는 ‘사조영웅전’등 3편을 묶은 ‘소설 영웅문’이 1985년 출간돼 선풍을 일으킨 것을 시작으로 그의 작품 15편이 번역됐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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