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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가짜 뉴스 잡겠다고 언론 통제하려는 위험한 발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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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현대는 정보화 사회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정보의 의미와 비중이 커졌다. 개인이나 기업, 심지어 국가 간에도 유용한 정보를 경쟁자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얻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정보를 불법적으로 유출하거나 왜곡함으로써 이익을 취하려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그로 인해 이른바 가짜 뉴스, 찌라시 정보라는 것들도 점차 늘어나는 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정부·여당, 가짜 뉴스와 전쟁 선포 #문제 제기를 가짜 뉴스로 몰기도 #민주사회는 의견다양성 존중해야 #정보소통과 언론 억압은 막아야

책임 있는 언론계에서는 치열한 취재 경쟁과 신속한 보도 못지않게 보도하는 내용의 신뢰성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매체들은 이른바 팩트 체크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런데 최근에는 언론매체의 자율적 팩트 체크를 넘어서 정부·여당이 앞장서서 가짜 뉴스와의 전쟁에 나서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가짜 뉴스 문제가 오죽 심각하면 그럴까 싶으면서도, 과연 이런 일에 정부·여당이 나서는 것이 바람직한지 의문이 든다.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을까 우려도 적지 않다.

최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서울교통공사의 고용세습 의혹에 대해 거짓 선동, 즉 가짜 뉴스라고 비판했다. 국정감사에서 야당의 문제 제기에 대해 여당이 가짜 뉴스로 폄훼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가짜 뉴스의 범람도 문제지만 정당한 비판을 가짜 뉴스로 몰아세우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가짜 뉴스로 인한 문제에 올바르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먼저 언론 보도에서 사실(fact)과 의견(opinion)부터 구분해야 한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를 위해 ‘사실’은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보도해야 하겠지만, 민주사회에서 ‘의견’의 다양성은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실의 왜곡에 대해 엄격하게 책임을 묻지만, 사실의 의미에 대한 주관적 해석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는 않는 것이 원칙이다.

시론 10/31

시론 10/31

예컨대 대통령이나 여당 대표가 평양에서 한 발언을 사실과 다르게 보도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지만, 발언 의미 해석에서는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짜 뉴스란 ‘사실 보도가 왜곡된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여야가 서로에게 중대한 정치적 의혹을 제기한 경우에 그 의혹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보도하는 것이 모두 가짜 뉴스는 아니다.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사실처럼 보도하는 것은 가짜 뉴스이지만, 의혹이 제기됐다는 사실 자체를, 그러한 의혹이 진실과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태도로, 보도하는 것은 가짜 뉴스가 아니다.

물론 사실로 제시되는 것들도 왜곡된 경우가 드물지 않다. 사실의 일부만을 제시함으로써 의도적으로 오해를 유발하는 경우, 이미 현실과 맞지 않는 과거의 사실을 제시함으로써 잘못된 추론을 유도하는 경우, 핵심적인 사실을 감춤으로써 진실을 왜곡하는 경우는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결을 고민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가짜 뉴스인지를 정부·여당이 검증해야 하겠나.

가짜 뉴스에 속은 경험이 많아지면서 가짜 뉴스에 대한 국민의 경계심도 높아졌다. 언론매체들의 팩트 체크도 더욱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여당의 가짜 뉴스와의 전쟁을 위해 정보의 소통이 억제되고, 언론이 억압돼서는 안 된다.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에는 무수한 정보가 있는데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정부가 가짜 뉴스가 아니라고 검증한 것만 인터넷에 게시될 수 있고, 언론에서 보도할 수 있다면 이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사형선고나 다를 바 없다.

언론의 자유는 다른 생각과 다른 주장의 자유이며, 비판과 반대의 자유다. 또한 언론 자유의 실질적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비판과 반대의 자유가 살아있는지 아닌지는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 즉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비판이 억압되는지를 보면 확인된다. 그런데 정부·여당의 눈에 거슬리는 것을 가짜 뉴스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보도를 통제할 수 있게 되면 언론의 자유는 숨 쉴 공간이 없게 된다. 그 때문에 가짜 뉴스와의 전쟁이 자칫 언론 자유와의 전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가짜 뉴스를 추방해야 한다는 목적 자체에 대해서야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목적의 정당성이 수단의 정당성으로 당연히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가짜 뉴스의 추방을 위한 절차와 방식은 언론의 자유에 대한 침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모색해야 한다. 그런데 가짜 뉴스를 잡기 위해 정부·여당이 언론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모두 태우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일이다. 언론의 자유가 무너진 이후에는 민주주의 또한 머지않은 장래에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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