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만 나눌게 아니라 결실 맺자-남북「고위회담」예비접촉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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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8일 판문점 우리측 지역인「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고위당국자회담 예비회담은 오전 10시 정각 양측대표 5명씩이 회담장에 입장하면서 시작.
양측 대표들은 날씨 등을 화제로 비교적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잠시 환담했는데 우리측 송한호 수석대표가『겨울에는 비가 왔고 예년과는 달리 날씨가 따뜻해 한강이 얼지않았다』고 하자 북측 백남준 단장은『대동강도 얼지않았다』고 인사.
송 수석대표가『만나서 미소나 짓고 악수나 하고 헤어지는 회담은 무의미하므로 이제는 겨레에게 희망을 주고 결실을 맺을 수 있는 회담이 되도록 하자』고 하자 백 단장은『능률적인 회담을 해 앞으로는 만나서 단순히 헤어지는 회담이 안되도록 하자』고 응수.
양측은 기본발언이 끝난 뒤 팀스피리트 훈련문제로 본격적인 입씨름을 시작.
북측은 팀스피리트 훈련을 중단하지 않으면 예비회담에서 한발짝도 나갈 수 없다는 강경입장을 일찌감치 표출.
북측은 우리측 송 수석대표가『팀스피리트는 대화의 문제가 되지않는다』고 하자『중지한다고 이해해도 좋으냐』고 역습.
북측은 계속『「그만두겠다」는 다섯 자만 말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다그치자 우리측은『군대가 있는 한 훈련하는 건 당연하지 않느냐. 북측이 일단 훈련을 참관해보라』고 대응.
양측 수석대표끼리의 설전에 이어 각 대표들이 구체적인 논거를 제시했는데 서로간에『내 얘기를 들어보라』며 소리지르는 등 발언권확보에 애쓰는 모습.
회담장엔 쿠바기자 3명, 중국 인민일보기자 2명, 프라우다 지 및 타스통신 등 소련기자 5, 6명이 취재.
평양주재 특파원이 없는 동독은 평양주재 동독대사관의「균테르·운테르베크」2등서기관이 보도완장을 차고 취재해 눈길.
그는『나는 한반도문제에 낙관적이기 때문에 갈 되리라 본다』고 회담전망을 하고『동서독과는 달리 한국의 통일은 한국인이 원한다면 비교적 쉽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주장.
김일성 대학 수학기간을 포함, 평양에 8년간 살았다는「운테르베크」는 한국말을 비교적 잘 했으나 남북한의 말이 달라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통신 등의 요약은 평양에서 받아보는데 읽기에 어려움을 가끔 느낀다고 술회.
그는 평양에는 약 1천명이 관용차 이외의 개인소유 승용차를 갖고 있으며 이들은 소득이 높은 과학자나 미술가, 그리고 북한과 외국간 합작 프로젝트 (현재 76개) 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소개.
그는 또 승용차의 대부분이 일본에서 수입한 차들이며 개인이 승용차를 소유한다는 것은 10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남한의 기사들을 읽다 보면 북한에 대해 그들이 얼마나 잘 모르고 있는가를 발견하게 된다』고도 했다.
북측의 백 단장은 회담이 끝난 뒤 우리측 평화의 집 앞에서 회견을 갖고『팀스피리트 훈련중지 문제에 대해 남측이 아무 대답을 주지않는 등 성실한 태도를 보이지않아 회담이 성과 없이 끝났다』고 강변.
그는『우리측은 소련과 합동군사훈련을 한적이 없으며 다만 해군이 소련함대의 친선방문 때 동해상에서 친선의식을 벌인데 불과하다』면서『이런 의례적 친선의식이 문제된다면 이를 고려할 용의가 있다』고 언급.
백 단장은 또 금강산 공동개발에 대해『정주영 선생이 고향을 개발하자고 한데 대해 합작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다가 우리측 기자가『정 회장의 고향이 통천인데 개발지역에는 원산까지 포함돼있다』고 지적하자『원산도 정 선생의 고향』이라고 궁색하게 답변한 뒤 회견을 급히 마무리.
9년만에 8일 판문점에서 재개된 남북고위당국자회담을 위한 준비회담은 북측이 팀스피리트 훈련을 물고 늘어져 약 2시간 15분 동안 실전만 주고 받다가 의제 등에 대해서는 토론도 해보지 못하고 성과 없이 종료. 양측은 오는 3월 2일 2차 준비회담을 갖기로 했으나 회담의 진전이 획기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다음은 이날 회담에서의 양측 대화내용.
▲북측=예비회담이 좋은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팀스피리트 합동군사훈련의 중지문제를 확실히 해야 한다.
송 통일원차관은 지금 팀스피리트 훈련이 방어적이며 적을 향해 무력을 사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또 북한도서의 출판을 억제하는 것도 내부문제니 간섭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북한의 사상을 탄압하고 도서출판을 억제하는 것이 어떻게 내부문제일 수 있는가. 예비회담의 실현, 고위급 정치군사회담을 개최하기 위해서도 팀스피리트 문제를 먼저 논의하고 실무절차문제는 후에 논의하자.
▲남측=팀스피리트 훈련문제를 예비회담의 전제조건처럼 이야기하는데 예비회담에 참석한 대표단의 임무는 당국자회담의 제반절차를 논의하는 게 아니겠느냐.
팀스피리트 훈련, 북한도서 출판보급의 문제는 절차문제와 관련이 없다.
팀스피리트 문제 등은 대표단의 임무를 벗어나며 총리회담을 빨리 성사시키자는 취지에 어긋난다.
북측의 태도는 과거 70년대와 80년대 중반까지의 태도와 무엇이 다른가. 과거와 같은 자세를 버리고 전향적·신축적인 자세로 예비회담에 임하자.
따라서 회담명칭·일시·장소·대표단구성·의제문제 등을 중심으로 토의하자.
▲북=회담장 밖의 총포소리와 회담장 안의 대화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밖에서의 총포소리는 그쳐야 하겠다.
▲남=팀스피리트와 남북대화는 관련이 없다. 귀측이 팀스피리트를 문제삼는데, 그렇다면 팀스피리트가 끝난 다음에라도 당연히 남북대화에 응해야 하지 않는가. 우리는 맡겨진 임무 외에 다른 문제는 거론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실무절차부터 얘기하자.
▲북=회담을 위해서 귀측은 팀스피리트 훈련을 중지하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
▲남=팀스피리트 문제가 이번 예비회담에 협의가 안되면 다른 절차문제도 얘기할 수 없다는 말인가.
▲북=실무절차문체는 본회담을 위한 것이다. 우리의 길 앞에 팀스피리트라는 난관이 놓여 있는데 어떻게 가능한 것이냐.
▲남=남북대화 관례상 상대방이 받아들이기 힘든 것을 먼저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는 쉬운 군사적신뢰구축 문제, 이를테면 직통전화가설 문제라든가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문제 등과 같은 쉬운 문제부터 얘기함으로써 대화의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겠느냐.
군사훈련문제와 관련해서 군대가 있는 한 훈련은 있는 법인데 상대측에서 콩 놓아라 팥 놓아라 하면 상대방이 어떻게 수용할 수 있겠는가.
▲북=우리는 귀측이 우리가 팀스피리트 문제를 꺼냈을 때 대학의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키 위해「돌아가서 연구해 보겠다」라는 말이 나오길 기대했는데 유감스럽다.
▲남=팀스피리트 훈련의 성격은 분명히 방어적이다.
▲북=우리는 휴전상태에 있다. 군대가 있기 때문에 훈련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귀국 군대만으로 하고 규모도 줄이고 명칭도 바꾸고 해야 할 것이다. 외국군대는 끌어 들이지 말라. 귀측이 팀스피리트 훈련문제에 대해 확실한 통보를 하기로 하고 오늘회담은 여기서 마치자. <판문점=안희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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