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끊긴 금강산 관광열차|눈감기전 다시 탈수 있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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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40여년간 꿈에 그리던 금강산관광열차의 경적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남북허리가 갈리기 전까지 강원도철원에서 내금강까지 전철을 정기 운행한 금강산전기 철도주식회사의 역무원으로 젊음을 보냈던 엄영섭씨(66·농업·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화지5리457의37)는 남북왕래 금강산관광과 이를 위한 금강산전철복원 계획의 소식을 듣고 남다른 감회에 잠긴다.
『당시 금강산전철은 해발1천m의 험한 산악지대를 오르내려 아찔하기도 했지만 주위 경관은 절경중의 절경이었습니다. 부디 금강산전철이 복원돼 근무하던 역사에 가보는 것이 40년 간직해온 소망』이라는 엄씨는 이젠 지척으로 다가온 북녘하늘을 쳐다본다.
엄씨가 일본인이 경영하던 금강산전기 철도주식회사와 인연을 맺은 것은 18세였던 1941년.
흰 장갑·제복 등 멋진 유니폼의 역무원을 선망해 철원고등소학교(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해 7대1의 경쟁률을 뚫고 역무원이 된 엄씨는 지금은 북쪽땅이 된 금화군 원북면 탄감역·금강산 역 등에서 한국인직원 3명과 함께 근무했었다.
금강산철도는 시발점인 철원역에서 종착역인 내금강까지 총연장 1백l6·6km로 일본이 창도 유화철을 운반하기 위해 21년부터 24년까지 주민들과 중국인의 노동력을 이용, 철원∼창도까지 1차로 개설한 후 23년 동경에서 설립된 금강산전기 철도주식회사가 26년 내금강까지 철도를 연장한 것. 당시 금강산전철은 열반 증기기관차로는 산악지대를 운행할 수 없어 금강산 중턱에 수력발전소를 세워 전기로 운행했다.
『종착역부근인 화계역부터 단발령까지는 해발1천m의 험한 산중턱을 지그재그로 달려 산꼭대기에 이르면 지나온 철도가 까마득하게 보입니다. 단발령의 굴을 빠져나가면 금강산의 기막힌 절경이 눈앞에 확 펼쳐지죠.』 금강산철도는 매일 8차례 운행됐으며 운행시간은 4시간으로 침대간·식당간이 설치돼있고 요금은 7원65전으로 당시 쌀 한가마 값 정도로 비싼 편이어서 보통사람들이 엄두를 내긴 힘들었지만 한국인은 물론 일본·중국·미국인 승객으로 거의 매일 만원을 이루었다는 것.
특히 금강산의 단품이 절경을 이루는 10월1일부터 10월20일까지의 「특별관광기간」에는 토요일 밤11시에 서울역을 출발, 다음날 새벽2시 철원역에서 기차를 바꿔 타고 아침6시 내금강에 닿는 「제1열차」가 관광객들의 큰 인기를 얻었다는 것.
당시 경원선과 금강산철도의 분기점인 철원역은 70여명의 역무원이 근무했고 연 이용객도 41만6천여명에 달해 서울역 다음으로 큰 역이었다. 붉은 벽돌 2층짜리 건물인 철원역에는 매점·휴게실 등 부수시설에 당시로는 보기 드문 「금강산 행전」이라는 네온사인과 구름다리 시설까지 갖추어져 그 자체로 명물구실을 했다.
6·25때 완전 파괴된 철원역 자리에는 현재 「안보관광단지」사업의 일환으로 가설된 40∼50m의 철도만 놓인채 금강산으로 이어질 날만을 고대하고있다.
지주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46년 역무원에서 쫓겨난 엄씨는 1·4후퇴 때 월남, 전주 등지에서 면서기로 지내다 고향인 철원으로 되돌아왔다. 『금강산관광열차의 그 멋진 낭만을 다시 맛볼수 있게 된다면 여한이 없겠다』는 엄씨의 눈엔 금강산 1만2천봉의 모습이 스쳐가고 있었다. <철원=제임갑·이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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