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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편집국장레터]시험받는 대통령의 취임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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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호 면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지난해 5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 중에서 여론에 가장 많이 회자된 구절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씩 말해온 평등, 공정, 정의를 하나로 꿰어 감명깊게 풀어낸 문장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9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9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VIP독자 여러분, 중앙SUNDAY 편집국장 박승희입니다. 금요일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 비가 그치면 기온은 뚝 떨어진다고 합니다. 월요일 출근길 아침엔 3도로 내려간다는 예보도 있습니다. 어느새 2018년은 겨울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없는 사람들은 여름보다 겨울을 두려워합니다. 이불이나 땔감 없이도 여름은 견딜 수 있지만 겨울을 나기 위해선, 겨울을 버티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올 겨울이 너무 춥지 않았으면 합니다.

 정치가 시끄럽습니다.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요즘 시끄러운 뉴스들 중 하나가 채용비리 의혹 논란입니다. 문제를 제기한 자유한국당은 ‘고용 세습’이라는 용어까지 동원하고 있습니다. 국정감사 과정에서 불거진 이 논란의 시작은 서울교통공사가 유민봉 의원에게 낸 ‘정규직 전환자의 친인척 재직현황’입니다. 사실 이 자료는 통계 자료였습니다. 서울교통공사는 이 자료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전 직원 1만7084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응답자 1만7045명 중 11.2%인 1912명이 친인척 재직자가 있다고 답했다는 겁니다. 직원들 중 10% 이상이 친인척이라는 데서 출발한 야당의 의문은 올 3월1일 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1285명 중 108명이 교통공사 직원과 6촌이내 친인척 관계로 조사된 자료가 공개되면서 의혹으로 번졌습니다. 108명 중에는 배우자도 있었고, 자녀도 있었으며, 형제자매도 있었다고 합니다. 논란이 불붙자 108명은 112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서울교통공사뿐 아니라 토지주택공사, 국토정보공사, 보훈의료공단,국립공원관리공단 등 다른 공기업ㆍ공공기관에서도 친인척을 정규직 전환 형식으로 채용한 사실들이 속속 드러났습니다.

 수세에 몰린 서울시와 박원순 시장은 시간이 지나며 ‘채용 비리’란 용어에서 ‘채용’과 ‘비리’를 분리해 대응하고 있습니다. JTBC와의 인터뷰에서 한 진성준 서울시 정무부시장의 해명이 그랬습니다.
 “계획적인 부정이나 조직적인 비리가 저질러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일탈 같은 것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감사원에 감사를 맡겨서 객관적으로 규명하자라고 하는 것이 서울시의 입장입니다.”“비공식적인 자료이기는 합니다마는 우리나라 전체 공무원 중 부부 숫자가 22%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또 서울시 본청에 근무하는 공무원의 부부 숫자가 5%입니다. ”“부모가 고위직이라고 해서 특혜가 있었다고 보는 것은 억지입니다. 비리가 있었는지는 감사원 감사를 지켜보면 될 일입니다”….
 아버지가 공무원이라고 해서 아들이 공무원이 돼선 안된다는 법이 없듯이, 아버지가 서울시교통공사 간부라고 해서 아들이 공사 직원이 될 수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진 부시장의 말처럼 옥석을 가리자는 얘기는 이성적입니다. 하지만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직원들 속에 공교롭게도 수서역 역장의 처와 처형이 포함돼 있는 걸 우연으로만 알고 넘기라는 건 더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특히 채용 비리 의혹은 지금의 여당이 야당이었을 때도 제기된 일이 있습니다. 한국마사회의 경우 최근 3년간 정규직으로 전환된 5519명 중 98명이 기존 직원의 친인척으로 드러났습니다.

장병완 민주평화당, 김성태 자유한국당,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왼쪽부터)가 22일 국회 정론관에서 서울교통공사의 고용세습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장병완 민주평화당, 김성태 자유한국당,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왼쪽부터)가 22일 국회 정론관에서 서울교통공사의 고용세습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채용 비리 의혹은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없애겠다는 현 정부의 공약과 맞물려 증폭되고 있습니다. 정규직 전환 숫자를 늘리려다 보니 친인척 채용 비리로까지 번졌다고 야당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채용 비리가 갖는 휘발성은 큽니다. 청년 실업률이 10%를 넘나들고, 당장의 청년 실업자 수가 40만명에 육박하는 시대입니다. 정부와 서울시는 이 문제를 수세적으로 다뤄선 안됩니다. 감사원이 감사를 시작했으니 지켜보라는 건 의혹만 증폭시키는 행위입니다. 이 정부가 야당 시절 그렇게 문제삼았던 4대강 문제도 감사원 감사에선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감사원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국정조사에 찬성한다는 여론이 59.9%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리얼미터가 24일 전국 성인 502명을 상대로 국정조사 실시 여부에 대한 의견을 조사해 25일 발표한 결과(95% 신뢰 수준 ±4.4%포인트)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찬성 응답이 59.9%였고, ‘감사원 감사 뒤 실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응답은 26%였습니다. ‘국정조사를 실시할 정도는 아니다’는 의견은 고작 9.3%였습니다.
 채용 비리 의혹은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대통령의 취임사를 정면으로 시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편이 다치더라도 더 철저하고, 가혹하게 다뤄야 할 사안입니다.

중앙SUNDAY는 지난 주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 논란과 관련해 변호사인 임장혁 기자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방송과 신문들에서도 인용한 깊이있는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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