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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반독점 문제 해결, 시진핑·마크롱은 CEO랑 담판짓는데 한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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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23일(현지시간) 오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파리 엘리제궁에서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 둘의 만남은 지난해 10월 이후 약 1년 만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쿡에게 애플 등 미국 정보기술(IT) 기업들의 불공정 계약, 세금 문제 등에 대해 언급하며 시정을 요구했다.

프랑스 국가 원수가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의 수장에게 이런 요구를 한 것은 수년 전부터 애플·구글 등 미국 IT 공룡 기업들이 유럽 현지 스타트업과 IT기업들에게 불공정한 계약 관계를 요구하면서 디지털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대부분 국가가 이런 문제로 미국 기업들과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문제가 되는 외국 IT 기업들의 역차별 문제를 프랑스에선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오른쪽)과 팀 쿡 애플 CEO가 지난해 10월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만난 모습. [사진 마크롱 트위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오른쪽)과 팀 쿡 애플 CEO가 지난해 10월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만난 모습. [사진 마크롱 트위터]

최근 들어 프랑스·중국 등 세계 주요 국가 정상들이 글로벌 IT 기업 수장들과 직접 만나 투자를 유치하고 반(反)독점·세금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이른바 'IT 외교'를 선보이고 있다. 거물급 IT 기업들과의 이해관계가 한 국가의 정치·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정상들이 직접 CEO들과 만나 각종 난제를 담판 짓고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다.

'IT 외교'에 가장 적극적인 사람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내 대기업 CEO들을 불러서 투자·고용 유치에 적극 나서는 '내수 강조형'이라면, 마크롱 대통령은 외국 대형 기업들을 타깃으로 한다. 마크롱 대통령은 올해에만 1, 3, 5월 세 차례에 걸쳐 각종 IT 콘퍼런스를 개최하면서 외국 IT 기업 CEO들과의 스킨십 횟수를 크게 늘렸다.

그는 지난 5월 '테크 포 굿' 콘퍼런스를 열고 페이스북·IBM·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IT 기업 CEO 50명을 대통령궁인 엘리제궁으로 초청했다. 그에 앞선 1월에 연 행사의 이름은 '프랑스를 선택하세요'(Choose France) 콘퍼런스다. 외국 기업들의 각종 생산, 연구·개발(R&D) 인프라를 프랑스에 유치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복안에서다.

지난 7월 EU가 구글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와 관련해 반독점 위반 혐의로 50억 달러(약 5조7000억원)를 부과했을 때도 프랑스 정부는 즉각 '탁월한 결정'이라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그만큼 반(反) 미국 기업 정서가 강하지만 동시에 '당근'을 주면서 투자 유치도 시도하는 '투트랙 전략'인 셈이다.

콘퍼런스에 참석한 기업들도 프랑스에서 행할 각종 투자·고용 계획을 내놓으며 마크롱 대통령에게 화답했다. IBM은 "앞으로 2년간 프랑스에서 블록체인 등 신산업 분야 종사자 1400명을 고용하겠다"고 밝혔으며, 구글은 "5년간 비영리 프로젝트에 1억 달러(약 113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6년 12월 대통령 당선인 시절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미국 뉴욕에서 만난 모습. 손 회장은 당시 트럼프 당선인을 만난 뒤 "소프트뱅크가 미국 시장에 최대 500억 달러(약 56조원)를 투자할 것"이라는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6년 12월 대통령 당선인 시절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미국 뉴욕에서 만난 모습. 손 회장은 당시 트럼프 당선인을 만난 뒤 "소프트뱅크가 미국 시장에 최대 500억 달러(약 56조원)를 투자할 것"이라는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AP=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외국 CEO들을 꾸준히 만날 요량으로 아예 '자문단'을 꾸린 케이스다.

시 주석은 2012년 취임 후 자신의 모교인 칭화(淸華)대에 '경제관리학원 자문위원회'를 만들었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 리옌훙 바이두 회장 등 자국 기업 수장들은 물론이고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회장, 팀 쿡 등도 고정 멤버다.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이 중국 내에서 서비스가 차단되는 굴욕을 당했지만 매년 자문위 회의에 참석하며 중국에 대한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기업들도 자문위에 참석하는 것이 나쁘지 않은 거로 인식하는 것이다.

해외 순방 중 기업 수장들을 직접 찾아가는 경우도 다반사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해 6월 방미 중 제프 베저스 아마존 회장, 순달 피차이 구글 CEO 등 20개 미국 기업 CEO들을 한꺼번에 만나 인도에 대한 투자를 요청했다. 시진핑도 2015년 미국에서 팀 쿡과 워런 버핏 버크셔 헤서웨이 회장을 만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취임 직후 저커버그로부터 취임 축하 e메일을 받은 뒤 "조만간 만나기를 희망한다"고 페이스북으로 답했다. 그러나 아직 두 사람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저커버그는 같은 해 7월에도 문 대통령 페이스북에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개최를 축하한다고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주요 국가 정상과 테크 기업 수장의 회동 분석해보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 팀 쿡 애플 CEO 만나 세금, 공정 계약 문제 등 논의(2018년 10월)
- '테크 포 굿' 컨퍼런스 등 열어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등 초청(2018년 1월, 3월 5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칭화대 경제관리학원 자문위원회에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일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 등 참여
- 시 주석은 자문위원회 소속 외국 IT 기업 CEO들과 수시로 만나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 방미 중 제프 베저스 아마존 회장, 순달 피차이 구글 CEO 등 만나 인도에 대한 투자 요청(2017년 6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 팀 쿡과 총리 관저에서 만나 도쿄·요코하마에 짓는 애플의 R&D 센터 등에 대해 논의(2016년 10월)

▶문재인 한국 대통령  
- 마크 저커버그로부터 취임 축하 e메일 받은 뒤 페이스북에 "조만간 만나자" 화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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