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쪽지문' 강릉노파 살인 사건 용의자 항소심도 무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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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 강릉에서 발생한 노파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쪽지문. [사진 강원지방경찰청]

13년 전 강릉에서 발생한 노파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쪽지문. [사진 강원지방경찰청]

13년 전 발생한 강릉 노파 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지목돼 법정에 선 정모(51)씨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 “쪽지문만으로 유죄 인정 어렵다” #“무죄로 판단한 원심 적법하다”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 1부(김복형 부장판사)는 24일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됐다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된 정모씨에게 원심과 같은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현장에서 발견된 피고인의 쪽지문만으로는 유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며 “원심의 판단은 적법하고, 검사의 항소는 이유 없어 기각한다”고 밝혔다.

13년 전 강릉 노파 살인 사건 현장 모습 [사진 강원지방경찰청]

13년 전 강릉 노파 살인 사건 현장 모습 [사진 강원지방경찰청]

정씨는 13년 전인 2005년 5월 13일 낮 12시 강릉시 구정면 덕현리 장모(당시 69세)씨 집에 몰래 들어가 장씨를 수차례 폭행하고 포장용 테이프로 얼굴 등을 감아 살해한 뒤 78만원 상당의 귀금속을 훔쳐 달아난 혐의로 지난해 9월 기소됐다.

정씨는 첫 재판에서 “당시 범행 현장에 간 적이 없다”며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이후 지난해 12월 15일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에서 무죄가 선고돼 석방됐다. 당시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한 배심원은 9명 중 8명은 무죄, 1명은 유죄로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을 저질렀다는 증거는 지문이 묻은 노란색 박스 테이프가 유일하다. 이 테이프가 불상의 경로에 의해 범행 장소에서 발견되었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스 테이프 외에는 피고인의 범죄를 뒷받침할 증거가 전혀 없고, 범행 후 12년이 지난 후 범인으로 지목돼 피고인으로서는 알리바이 등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게 됐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강릉 노파 살인사건 용의자가 범행에 사용한 포장용 테이프. [연합뉴스]

강릉 노파 살인사건 용의자가 범행에 사용한 포장용 테이프. [연합뉴스]

장기 미제 강력사건이던 이 사건은 12년 만에 길이 ‘1㎝ 쪽지문’의 주인이 밝혀지면서 수사에 탄력을 받았다.

범행에 사용된 포장용 테이프에 쪽지문이 흐릿하게 남아있었는데 ‘융선(지문을 이루는 곡선)’이 뚜렷하지 않아 당시 지문 감식 기술로는 쪽지문의 주인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과학수사가 발달하면서 경찰이 지문자동검색시스템(AFIS)에 해당 쪽지문을 재감정했고, 그 결과 지문의 주인이 정씨라는 것이 확인됐다.

춘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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